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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사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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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1.2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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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병구(부산광역시의사회 부회장)

거세게 몰아치는 정치바람과 함께 의사 사회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정치와는 담을 쌓고 진료실만 지키던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불과 수 년 사이에 일어난 변화이다.

이처럼 의사들이 진료실 바깥 세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을 철이 늦게 들었다고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인지 선뜻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한다면 의사들 자신을 위해서든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을 위해서든 그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의사의 존재 의미는 오직 환자를 돌보는 데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부터 개인적으로 많이 느꼈던 점을 의사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한 번씩 들려준 말이 있다.

'의사는 농부와 같다. 농부가 농사일에 관심을 두지 못하고 다른 일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어떻게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가 있겠는가? 농부는 오직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다음 곡식이 잘 자라도록 돌보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그런데 이제 의사들이 마음 떠난 농부처럼 논 가운데 서서 곡식을 살피는 일은 등한시 하고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한 해의 농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처럼 의사들을 세상 가운데로 끌어들인 장본인은 바로 정부와 정치권이다. 정부는 일부 의료학자나 편향된 정치인들의 취향에 따라 이런 식으로 의료정책을 진행시키지 말았어야 했다. 강압적인 방식으로 의료정책을 몰아붙이는 바람에 불과 수년 사이에 지금까지 의사들이 가졌던 삶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이 변해버린 것이다.

그동안 의사들이 깨달은 것은 정치의 위력이며 그로 인해 선택한 수단이 바로 현실적인 정치참여라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짓밟힌 자존심과 열악해진 진료환경 속에서는 의사로서의 삶에 대한 보람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생존을 위하여 애써 배운 지식을 헌신짝 버리듯 던져버리는 의사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 가족들의 생계만 책임질 수 있다면 전문가로서의 양심도 의사로서의 자존심도 버려야 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소명 혹은 정치적인 역량이나 재능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의사는 자신의 진료실을 지키면서 의사로서 본분을 다하는 것이 도리이다. 굳이 현실정치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면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투표를 통하여 자기의 의사표현을 하거나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후원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러나 이 나라의 정치현실은 의사들이 그런 식으로만 살아가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일찍부터 정치를 가까이 해온 세력들로 인해 의료의 근본마저 흔들리고 있는 이 때 모든 의사가 더 이상 방관자처럼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부나 행정당국은 올바른 의료정책을 펴기 위한 노력은 소홀히 한 채 오직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위한 방편으로 의료정책을 이용하여왔다. 그와 더불어 의사들을 그 도구로 생각하여 지나친 희생을 강요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들이 추구한 정책 실패의 모든 원인을 의사들의 탓으로만 돌려온 것이다. 이처럼 의사들을 일반국민으로부터 이간질하는 행위가 과연 이 나라 정부가 취해야 할 태도인가?

지금도 언론을 통해 '가진 자들의 밥그릇 지키기'라는 말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의사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고 있다. 더구나 벼랑 끝에 내몰려 발버둥치며 외치는 의사들의 비명소리조차 늑대소년의 외침으로 듣게 만든 것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을 펼치기 위해 의사들에게 뒤집어씌운 허물들로 인해 이 나라에서 가장 부패한 무리가 의사들이라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진료실을 지키는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참담한 심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 나라의 의료정책은 오로지 정치인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인식이 사라질 때까지 정치에 대한 의사들의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오늘의 현실이 안타깝다.

체질적으로 잘 맞지도 않는 정치생리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현실정치에 뛰어든 의사들의 어설픈 몸짓이 장차 이 나라의 의료정책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이 나라의 정치가 바로 세우지 못한 의료제도의 골격을 다시 세우는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이러한 의사들의 노력에 대해 정부와 언론은 '집단이기주의'라는 누명만 씌울 것이 아니라 이처럼 의사들을 진료실 바깥세상으로 끌어낸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그 원인을 살펴서 근본을 바로잡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참다운 국민의료가 원칙에 따라 시행되는 날 모든 의사가 오로지 진료실을 지키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오게 되리라고 믿는다. 원칙이 지켜질 때 바른 사회, 국민을 위한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음 세대의 정치인은 반드시 기억하여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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