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피는 장미

밤에 피는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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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1.2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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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순천향대부천병원 산부인과 전임강사)

장미는 아름다움과 화려함이 상징인 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프로포즈할 때 장미가 아닌 꽃을 가져가는 경우는 그 여인이 심한 장미 꽃 알레르기가 있거나 장미가 아닌 다른 좋아하는 꽃이 있을 경우일 것이다. '들장미 소녀 캔디'라는 우리 30~50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만화 영화의 주인공 캔디도 들에서 피어나는 장미다. 역시 장미는 예쁘고, 남자주인공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내용의 만화영화이다. 산부인과 의사란 직업은 마치 '밤에 피는 장미'와 비슷하다. 물론 응급을 요하는 많은 외과계 수술이 밤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왜 산부인과만 장미냐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같다. 전임의 때부터 지금까지 지난 5년동안 밤에 얼마나 많은 분만이 있었나 분만대장을 뒤져보았다. 정확하게 5년동안 분만의 50%가 병원 일과가 끝난 시간부터 다음날 일과가 시작하기 전까지 사이에 이루어졌다는 통계가 나왔다.

나뿐 아니라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아기를 받기 위해서 밤을 낮 삼아 일하고 있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하지만 밤낮 가리지 않고 1명도 아닌 두 명의 생명을 살리는 고귀한 일에 긍지를 갖고 일하기에는 현재의 의료 현실이 너무 잔인하다. 산모의 초음파 검사횟수를 제한하여 보험 급여를 주겠다는 방안, 산모의 마지막달 검진 때 수술을 하지 않으면 급여를 삭감하는 방안, 제왕절개를 할 때는 의사가 잘못한 것으로 생각해 제왕절개율에 따라 의료비를 차별화하겠다는 정책 등. 이런 상황 속에서 야간경비보다도 적은 수가를 주면서 밤일을 강요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이지 않은가. 혹시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의사로서의 봉사와 희생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질이 없는 의사라는 소리를 듣게 될까바인지 아니면 아예 말을 꺼낼 의미가 없다고 해서 스스로 외면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전공의 시절 항상 윗사람 말에 거의 복종하면서 길들여진 본능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의 의견을 말하고 잘못을 시정하고자 하는 자신감 있는 주장보다는 의사들이 정면으로 해결해 보려 하지 않고 다른 무리한 돌파구를 찾는 모습이 보인다. 산전검사를 받던 병원에서 분만해야만 인근 조산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수술 도중에 남편이 탯줄을 꼭 자르게 하는 이벤트를 하거나, 몇 차례에 걸쳐 산전 검사받은 병원에서 아기를 낳으면 출산 선물이나 보약을 주는 쿠폰을 주기도 하는 것들이다.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의사들이 교과서와 원칙에 입각하지 않은 특별한 메뉴개발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산모를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산모를 받아주는 산부인과 의사를, 산부인과 의사들이 하는 일의 고단함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산부인과 의사가 밤에 피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장미로 인정받는 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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