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의료채권법은 의료기관 '이마트'화 촉진법
시론 의료채권법은 의료기관 '이마트'화 촉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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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2.1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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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윤(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산업의학 전문의)

보건복지부는 10월 18일 '의료채권발행에 관한 법률안(의료채권법)'을 입법예고했다. 그리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는 의미로 11월 29일 공청회를 진행했다.

정부는 자금조달 수단이 금융권 차입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비영리법인인 의료기관이 다른 수단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 위해 이 법을 제정하려 한다고 밝히고 있다. 언뜻 들으면 솔깃한 이야기이다. 그간 매월 돌아오는 은행 이자 메우기가 어렵다고 한탄하던 병원장들 입장에서는 관심이 생길 만하다. 채권 발행으로 은행 보다 싼 이자에다 상대적으로 장기간 차입할 수 있는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하니 더욱 관심이 간다. 그러나 언감생심이다.

정부는 이 법을 입법예고하고 공청회까지 진행하면서 이 법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무슨 제도이든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고, 제도 도입에 앞서서는 그러한 장·단점을 다 같이 살펴보고 판단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제도의 단점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인 것이다. 무슨 꿍꿍이인가.

이 제도 도입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특히 중소병원이나 개원의들에게 부작용이 집중될 가능성이 많다는 측면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첫째 일부 잘나가는 의료기관과 네트워크병의원에게만 유리한 법률이다. 정부는 비영리법인인 의료기관 모두가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처럼 선전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채권 발행은 아무 법인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문 신용평가기관에서 일정 정도 등급 이상을 받은 법인만 채권을 발행할 수 있다. 채권을 발행한다고 해서 다 팔리는 것도 아니다. 채권 구매자 입장에서는 주식보다 배당이 낮은 채권을 구입하는 것은 상대적 안정성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매자들은 안정적 배당금을 보장한다고 생각하는 의료기관이 발행한 채권만을 살 것이다. 게다가 채권 발행 규모는 법인의 순자산에 비례하여 네 배까지 허용된다. 순자산 규모가 큰 의료기관은 채권을 더 많이 발행해서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구조화된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들을 다 조합해 보면 흩어져 있던 퍼즐이 완성되는 느낌이다. 그렇다. 이 법안은 결코 현재 어렵게 운영하고 있는 중소병원을 위한 법이 아니다. 지금도 순자산이 많은, 그리고 신용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는 일부 병원과 네트워크 병의원만이 이득을 보는 법안이다.

둘째 이 법안은 의료기관이 신용평가기관과 채권 매입자의 입김에 휘둘리게 만들어, 의료의 본령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의료기관 경영은 일반 기업의 경영과 다르다. 의료기관은 지역사회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비영리기관으로서 공공적 기능을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신용평가기관의 신용 평가 기준은 오로지 이윤 창출 규모이다. 해당 의료기관이 행하는 의료의 질이나 지역사회에서의 평판같은 것은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좋은 의료기관이지만 채권 발행을 못하는 의료기관이 생길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채권 발행을 위해서 의료기관간에 왜곡된 경쟁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셋째 의료기관이 의료 행위보다 부대사업에 열을 올리도록 유도할 수 있는 법률이다. 이 법은 채권 발행으로 차입한 자금을 병원의 부대사업을 위해서도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병원이 채권 발행으로 차입한 자금을 시설 투자나 장비 매입 등에 사용하기보다 부대사업 확장에 써 진료 기능이 오히려 축소될 가능성이 있는 대목이다.

넷째 이 법이 만들어지게 되면 일부 병원과 네트워크 병의원 중심으로 병의원이 급격하게 체인화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비영리법인인 의료기관의 채권 발행이 시작된 이후 급격한 속도로 병원의 인수·합병과 체인화가 이루어졌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렇다. 동네의원과 중소병원의 몰락이다. 우리나라 유통시장에 '이마트'와 같은 대형유통업체와 편의점과 같은 체인업체가 들어선 이후 동네 구멍가게가 몰락한 것과 똑같은 이치다. 채권 매입자 입장에서는 대형화되고 체인화된 의료기관에 대한 부담이 적기 때문에 이러한 의료기관의 채권을 선호하게 되는데, 그러한 채권 매입자의 선호가 위와 같은 변화를 촉발하게 된다.

이러한 부작용과 별개로 과연 이 제도가 정부가 말하는 것과 같은 효과라도 있을지도 의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채권 매입자가 주식 대신 채권을 매입하는 이유는 배당금이 낮아도 상대적으로 안정적 수익을 보장한다는 이유 때문일텐데, 과연 국채나 지방채 같은 안정적 채권을 놔두고 병원채권을 살 이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정부는 막이 내려져 가는 이번 17대 국회에서 어떻게든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의료 체계를 통째로 왜곡시킬 가능성이 많은 이 법의 제정은 모든 의료인이 나서서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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