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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연말정산 간소화' 이래서 문제다

시론 '연말정산 간소화' 이래서 문제다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1.0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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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택(한국납세자연맹회장)

국세청이 시행하고 있는 이른바 '연말정산 간소화 시스템'이 납세자들에게는 되레 번거롭게 다가온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이와 별도로 이 시스템이 납세자의 개인정보를 무제한 집적하고, 전용할 수 있다는 인권침해 차원에서 줄곧 문제를 제기해왔다.

국세청은 "연말정산 간소화 시스템에서는 환자 병명도 없고, 의료기관명도 식별할 수 없는 상태로 보여주고, 공인인증서로 확인되는 본인만 조회할 수 있어 대외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개인정보 침해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또 "지난 1년간 단 1건의 자료 유출도 없고, 여론조사 결과 근로자 대부분이 '연말정산간소화 시스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국세청 말만 들으면 '연말정산 간소화 시스템'은 개인정보 집적·전용 등 인권침해 소지가 전혀 없는 아주 좋은 제도다. 과연 그럴까. 대답은 노(No!)다.

우선, 헌법재판소가 지난 2005년에 판례를 통해 인정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위배하고 있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또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를 그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다. 국가권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헌재는 "국민의 인격권과 관련된 민감한 개인정보제출은 국회에서 정하는 법률에 따라 구체적으로 정해야 하고, 그렇지 않고 시행령 등에 백지위임하면 위헌"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연말정산 간소화 시스템'상의 의료비정보는 어떤가. 비록 '연말정산간소화 시스템'에서 전체 의료기관의 현황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국세청은 마음만 먹으면 약간의 확인과 조사절차를 거쳐 납세자의 병력과 진·치료현황 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납세자 A에게 정신병력이 있고, B는 미혼임에도 불구하고 산부인과에서 낙태수술을 받았으며, C는 수천만원을 들여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정보를 수집하는데 전혀 장애가 없는 것이다. 국가기관인 국세청만 통하면 누구든 개인의 의료관련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선 더 이상 설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둘째, 국가기관이 연말정산의 일개 항목인 의료비공제 때문에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전체 납세자의 의료관련 정보를 과연 집적, 보유해야 하는지의 문제다. 연말정산하는 근로소득자는 1200만명, 이중 146만명만 의료비공제를 받는다. 하지만 국가는 결과적으로 의료비공제를 받지 않는 나머지 근로소득자와 연말정산과 무관한 비근로소득자의 의료비 정보를 과다하게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더라도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셋째, 국세청이 자랑스레 밝힌바 있는 "지난 1년간 개인정보 유출이 없었다"는 대목은 한국사회의 납세자 정보인권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일천한지를 보여준다. 법률로 튼실한 견제장치를 만들어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정보유출사고가 나게 마련인 마당에, '국민의 개인정보 보호'라는 중차대한 문제가 국세청이라는 일개 국가기관의 정책의지와 양심에 맡겨져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실제로 최근 영국에서는 한 공무원의 실수로 전체 인구의 40%의 신상이 담긴 CD를 분실하여 국세청장이 사임하는 일이 발생했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이 아는 사람의 약혼자가 과거에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려줘 파혼에 이르게 하고, 친구 애인의 임신중절 수술 사실을 들춰봤으며, 조직폭력배가 낀 불법채권추심업체에 가입자 정보를 넘겨 문제가 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막대한 개인정보를 가지고 있는 국세청을 감독할 독립적인 감독기구도 없다. 하물며 "자신의 개인정보를 열람한 공무원의 이름과 조회사유를 밝혀라"는 납세자의 정보공개청구도 당당하게 거부하는 한국의 국세청이 아니던가. 민주주의란 한 사람의 인권을 위해 다수가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회다. 따라서 국가기관의  행정편의를 위해 다수의 인권이 희생된다면 민주주의의 원리 자체가 훼손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국세청이 추진하고 있는 '연말정산 간소화 시스템'은 정말 문제다. 질병치료에 대한 개인정보 유출, 무단열람 등에 따른 피해는 억만금을 주고도 보상이 안 된다. 행정편의보다 개인인권보호가 더 중요한 가치이다. 개인의 정보인권과 국가의 행정합리화가 병행되기 위해선 최소한의 장치라도 시급히 마련된 뒤에 시행해야 할 것이다. 국세청은 비근로자의 의료비정보를 즉각 폐기하고, 국민의 동의를 받은 정보만 간소화 시스템에서 조회되도록 해야 한다. 간소화 정보가 다른 세목의 세무조사를 위해서도 사용될 수 있도록 한 규정도 삭제, 연말정산이외의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차제에 국가기관이 국민 개개인의 정보를 집적, 활용하는 데 따른 기본권침해 문제점과 합리적인 대안을 국민적 합의로 도출해 튼튼한 제도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 02)736-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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