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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조직개편 논의에서 홀대받는 국민보건

시론 조직개편 논의에서 홀대받는 국민보건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1.1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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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언항(건양대학교 보건복지대학원장)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부 조직 개편 방향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보건복지부를 가족복지부 또는 여성가족부로 바꾼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설마 하면서 조직개편에서 보건업무가 지나치게 가볍게 치부되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행정부에 '보건'이라는 명칭을 가진 부처가 없는 나라는 없는 것으로 안다. OECD 24개국 중 정부부처 명칭에서 '보건'이라는 용어가 빠진 나라는 한 나라도 없다. 일본은 후생노동성이지만 영어 명칭은 'Ministry of Health, Labour and Welfare'라고 쓰고 있다.

우리나라는 1949년 보건부를 사회부로부터 독립하여 설치하였다가 1955년 사회부와 다시 통합하여 보건사회부가 탄생한 이래 지난 60여년간 정부 부처 명칭에서 '보건'이라는 명칭을 써 왔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제36조 제3항)"라고 선언하고 있다. 국민의 보건권은 헌법상의 생명권·행복추구권·인간다운 생활권의 전제조건이다. 건강이 무너지면 남는 것이 없기 때문에 1948년 건국헌법 제20조가 가족의 건강조항을 규정한 이래 역대 헌법이 가족의 건강 내지 국민의 보건권을 규정해 오고 있는 것이다.

행정부처에 써왔던 보건의 명칭을 없애는 것은 보건문제가 심각하지 않다는 것인데 과연 그런가. 대한민국의 보건의료시스템이 헌법이 선언한 대로 국민의 보건을 보호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작동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아직도 국민 건강을 해할 가능성이 있는 각종 위해요인인 국민을 현혹시키는 유사의료행위, 돌팔이 의료,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건강식품, 유해 식품 등이 범람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제거하여 국민을 보호하여야 한다. 지나치게 많이 먹고, 마시고, 피우고 여기다가 운동부족 등으로 고혈압·당뇨병·암 환자 등이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한 국민의 고통과 경제 부담은 얼마나 큰가. 정부는 어떻게 국민이 건전한 생활습관을 하게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한다.

최근 최요삼 권투선수의 예에서와 같이 응급의료시스템도 손을 보아야 한다. 선진국이었다면 살 수 있는 응급환자가 우리나라에서는 잘못된 응급의료체계로 죽거나 영원한 장애를 입는다.

응급의료예방가능사망율(2005년)이 39.9%이다. 이는 응급시스템이 잘 되어 있으면 살 수 있는 100명 중 40여명이 사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15%, 싱가포르는 22%라고 한다. 어처구니없고 안타까운 일이다.

집안 식구가 장기입원을 하면 온 집안에 비상이 걸린다. 어느 나라가 우리처럼 간호사가 아닌 식구나 간병인이 간호를 하는가. 원하는 병원에 입원이라도 하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특실에 우선 입원하여야 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입원실을 가려면 3·4일은 기다려야 한다.

작년부터 적자가 나기 시작한 건강보험재정도 언제 터질 줄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노령화, 의약기술의 발전과 국민의 의료에 대한 욕구 증가는 의료비에 대한 국가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새 정부가 해결하는데 쉽지 않은 문제들이다. 국민의 절대적인 이해와 협조를 바탕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이를 가족복지부라는 이름으로 감당할 수 있겠는가.

SARS와 같은 대규모 전염병의 확산, 암 정복, 금연·절주 운동 등 건전한 생활습관에 의한 건강 유지를 국민에게 호소할 때 '가족복지부장관'보다 '보건복지부장관'이름으로 하는 것이 훨씬 친숙하고 권위 있게 들리지 않겠는가.

부처의 명칭은 국민이 이름만 보고도 왜 그 부처가 존재하고 국민에게 무엇을 서비스하는지를 알게끔 지어야 한다. 조직의 구성원인 공무원도 부처의 명칭에서 그들이 왜 존재하며 국민을 위하여 무엇을 추구하는지의 정체성(identity)을 갖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질병관리본부·국립보건원·식품의약품안전청 등에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간호사·약사 등 수십 종의 전문인력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국민의 보건증진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 그러나 보건이라는 명칭이 빠진 부처에서 국민보건업무의 추진은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논의되고 있는 가족복지부 또는 여성복지부의 가족복지·여성복지는 복지(welfare)의 한 분야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동복지·노인복지·장애인 복지와 같은 것이다. 전 국민을 포함하지 않는 여성 또는 가족만의 복지 향상만을 추구하는 부처로 인식될 수 있다.

만일 가족복지부가 되면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매년 5월 스위스에서 세계보건기구(WHO)총회가 개최되는데 아마도 금년 총회에 대한민국 대표로 참석한 가족복지부장관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각국 보건장관들로부터 받을 것이다. "한국의 보건장관께서는 참석하지 못할 사정이 있으셨던 모양이지요?"라고 말이다. 보건부가 없는 나라가 없기에 보건부장관을 대신하여 가족복지부장관이 참석한 것으로 오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행여 부처의 명칭을 정하는데 정치적인 고려가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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