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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학교육제도, 대학 자율에 맡길 일인가?
시론 의학교육제도, 대학 자율에 맡길 일인가?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1.18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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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아주의대 내분비대사내과)

이 글은 kmatimes.com의 이명박 정부의 과제 1:왕규창 서울의대 학장의 '의학교육, 대학 자율에 맡겨야'에 대한 반론으로 게재합니다.

무자년(戊子年) 쥐띠의 해가 시작되었다. 요즘의 화두는 새로운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기존 정부에 대한 평가이다. 역대 최대의 표 차이로 노무현 정부와 그 흐름을 무너뜨리고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였다.

아직은 인수위원회 활동이지만 사회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 흐름을 타고 나온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이해를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 제도의 도입이 확정되고 이미 많은 대학에서 그 제도에 따라 학생을 선발하고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이 시점에 "의학교육, 대학 자율에 맡겨야"라는 한국의대학장협의회장의 글은 너무나도 무책임한 발언의 되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글을 읽고 흥분이 되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우선 2008년 1월 7일자 기획글이 41개 의과대학 학장들의 공통된 생각을 대변하고 있는 것인지, 협의회장 개인의 생각인지가 궁금하다. 27개 의대가 의전원 체계로 전환하여 학생선발제도를 바꾸었으며, 2005년 가장 먼저 의전원으로 전환한 가천의대 등 10개 의대는 의전원으로 학생을 교육하고 있으며 2009년이면 그 첫 졸업생을 배출하게 되어 있다.

2009년이면 의전원으로 선발하는 입학생이 1,641명이나 된다고 한다. 많은 의대가 의전원 체제로의 전환을 준비하고 있는 이 시점에 의전원 제도는 대다수의 의대에서는 원하지 않았는데 교육부와 일부 인사(?)의 일방적인 정책의지에 의해 시행된 제도여서 문제점이 아주 많으며, 지금이라도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고집이고 횡포란 말인가.

'자율'이란 아주 좋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초등학교 때 도덕선생님이 자유와 방종의 차이를 설명해준 것이 생각난다.

2년전 필자가 본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도 밝혔지만 의전원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일부 대학을 굳이 끌어들여서 열심히 해보려 하는 의대(의전원)까지 헤깔리게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솔직히 서울의대가 미국의 하버드의대처럼 의전원 제도를 선도적으로 추진해주길 희망했지만, 입학관련 서류에 의전원을 '시범사업'이라고 명기하고, 공공연하게 2010년엔 다시 원래 6년제로 환원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내고 있다는데 너무나도 실망스럽다.

의전원 제도는 노무현 정부가 계획하고 시행한 정책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1996년 김영삼 정부때 대통령 자문 '교육개혁위원회'에서 의전원 제도의 도입이 검토되기 시작했다.

당시 의전원 도입의 필요성으로 제시된 문제점은 첫째 의학교육 입문방식이 폐쇄적이고 단선화되어 있다, 둘째 인접 학문분야와의 연계성이 결여되어 창의성이 부족하다,

셋째 의학교육 각 과정간의 단선적 연계제도, 넷째 의학교육 전체과정(의예과/의학과)중 중간평가 제도의 부재, 다섯째 학위와 면허 및 자격에 대한 개념의 혼동과 이에 따른 교육적 낭비로 정리한 바 있다.

의전원 제도는 단지 학제를 4+4로 바꾸는 문제를 넘어 의학교육과정의 내용과 학생 선발, 졸업후 수련과정 및 의료인력공급의 조절 등 의사인력 양성 전반에 걸친 전면적인 수정을 의미하는 중대한 움직임인데 그 흐름을 주도하기는커녕 대통령이 바뀌는 시기가 되니 기회다 싶어 반대하는 의견을 내는 것은 과연 서울의대가 국립의대가 맞는지 의구심이 들게 한다.

글을 읽다보면 학생의 고령화, 경제적 약자와 군복무 의무자의 진입 장애, 학생들의 학문지향성 감소, 의사생애 단축, 졸업생들의 수익 추구경향 강화, 이공계 학부의 입시학원화 및 학문 육성 방해, 군의관 및 공중보건의사 수급 부족 등 의전원 도입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의전원 추진 과정에서부터 우려되었던 문제점들이다.

의전원 학생 등록금 문제를 심각하게 지적하고 있다. 필자도 왜 의전원 등록금이 갑자기2~3배 늘어서 1년에 2000만원이어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일부 의견에 따르면 의예과를 없어지고 전공의의 석사지원이 줄면서 생기는 재정적 피해를 보전하기 위해 올렸다는 계산을 내놓고 있다.

미국 의대의 등록금이 많다고 소문나 있지만, 2007년 사립의대의 연평균 등록금이 4만달러이고 주립(공립)의대는 2만2000달러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의대 등록금이 연 2만달러가 넘는다고 보면 좀 지나치게 높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캐나다는 등록금이 가장 많은 토론토의대가 연간 1만7000달러 정도이다.

우리보다 적지만 우리처럼 부모가 등록금을 대주는게 아니라 스스로 빚을 내서 학교를 다니는게 보통이기 때문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등록금에 대한 부담 때문에 연구분야로 진출하는 의대생이 1980년 12%에서 1993년 6%로 감소했다고 한다.

미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교육부는 의전원으로의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등록금을 파격적으로 인상하는 것에 묵인해버린 것 같다.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걱정하고 그로 인해 경제적 약자의 의사로의 진출이 봉쇄되는 것을 걱정한다면 합리적인 의전원 등록금에 대해 학장협의회에서 '자율적'으로 논의하던지, 아니면 장기저리로 등록금 대출이 가능하도록 정부에 요구해야 앞뒤가 맞는 주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미국에서 교육비의 증가를 고민하면서 6-7년제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고 하지만, 영국처럼 우리와 같은 6년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도 미국과 같이 학사출신 의대생을 선발하는 제도를 2007년 현재 32개 의대중 15개 의대에서 병행 운영하고 있다.

6년제가 좋으냐 4+4가 좋으냐를 얘기하는 건 너무나 소모적인 논쟁이다. 교육연한의 증가를 주장하는 많은 분들이 제발 주체가 되어 인턴제도의 폐지와 서브인턴제도의 도입, 전공의 수련연한의 축소, 군의관 복부기간의 단축 등의 필요성을 인수위원회에 요구했으면 좋겠다.

MD-PhD 제도가 기초과학지식을 갖춘 의과학자를 양성하여 신약개발, 줄기세포연구, 장기이식, 인공장기 개발 등에 우수 인력을 제공할 수 있는 좋은 제도임에도 군복무 등의 제반 여건이 허용하지 못하여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데 제발 그런 점을 인수위원회에 호소해주었으면 좋겠다.

정부가 BK사업과 의전원 전환을 연계했던 것은 너무나도 치사한 행정이었다. 필자가 있는 의대도 궁여지책으로 의전원 부분전환을 결정하고 말았지만 지금도 많은 의대교수들이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다.

BK사업을 통해 지원되는 5-10억이라는 지원금이 사립의대에서는 교육부의 정책을 거역할 수 없는 너무나도 큰 금액이라는 사실이 서글플 따름이다.

이공계 대학의 공동화를 지적하지만, 의전원의 입학조건을 통해 해결할 문제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철저하게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 물론 MEET 시험 (일종의 입학시험)을 국가기관이 관리하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어떤 학생을 선발할지는 해당 의전원의 교육철학에 맞게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단지 MEET 시험을 잘 본 사람이 합격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일부 대학교에서 의전원 준비를 위한 학부(학과)를 신설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스러운 편법이다.

학부성적이나 학생활동 내역, 교수의 추천장(우리 현실과 약간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지원사유서, MEET 성적, 면접성적 등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항목도 중요하지만, 학부에서의 연구업적(논문 포함), 학위 여부, 자원봉사 활동이나 국제적인 연구 및 학생활동 교류 등 다양한 영역을 평가한다면 지금 이공계 대학에서 의전원 입학을 위해 학원을 다니고 시험공부만 하는 학생들은 줄어들 것이고 이공계 대학도 정상화될 것이다.

마치 지금의 사법시험제도가 골방에서 공부만 죽어라 해도 합격할 수 있고, 그러다보니 일부 사회성이 부족하고 미숙한 법조인이 나오게 되는 것과 같다.

법학전문대학원(Law school)이 제기되는 이유도 의전원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본다. 미국의 예를 보면 2005년 의대 입학생의 40%는 non-biological sciences 출신이다. 인문학부 출신이 5%, 사회과학 분야가 12%, 자연과학이 13% 등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지금 의전원은 시작단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시작 과정에 적지 않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지만, 해보지도 않고 걱정되니 되돌리자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적어도 10년은 해보고 평가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필자도 솔직히 의전원이 과연 지금 의학교육의 해답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10년 넘게 연구하고 토론하여 내린 결론이 의전원이라면 한번 해보고 나서 평가해야 옳지 않나 생각한다. 의전원의 문제점을 주장하려면 하다못해 일부 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학사편입학, 복수전공을 통해 입학한 의대생들의 졸업후 진로라도 데이터를 가지고 비판을 해야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싶다.

최근 인수위원회가 기존의 교육정책의 기조가 평등을 강조하고 규제 일변도로 흘러갔던 것에 대한 비판 속에 '교육부를 없애야 한다'고 하면서 대학교육은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하였다.

모든 대학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 같지만, 일부 수도권에 있는 잘 나가는 대학 외에는 오히려 지나친 경쟁 속에 부작용만 커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의학교육도 대학 자율에 맡겨야 의생명과학의 발전과 국가경쟁력이 확보될 것처럼 얘기하지만 그야말로 얘기가 쉽다.

지금의 우리 의과대학은 기본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수년전부터 의과대학 인정평가를 시행하고 있지만 행정적인 권한이 없기 때문에 형식적인 평가에 그치고 있다. 터무니없이 잘못하고 있는 대학도 있고, 잘 하고 있는 대학도 부분적으로는 부족한 많은 영역이 있지만 평가 때만 대충 포장해서 보여주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절대적으로 학생등록금이나 병원수입에만 의존하는 많은 사립의대가 제대로 교수요원을 갖추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다.

20세기초 미국의 의과대학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수행한 <플렉스너 보고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160개의 의과대학을 수준을 평가하여 31개의 의과대학이 문을 닫았다.

학생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대학을 나온 사람만 의대를 입학할 수 있도록 하였다. 뼈를 깎는 고통이 지금 미국사회에서 의사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사회적 인정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보건복지부가 연간 수백억을 연구비로 지원하고 있고, 교육부, 과학기술부, 지방정부 등을 포함하면 수천억원이 의학, 생명과(공)학 분야에 투자되고 있지만 의학교육의 정상화, 내실화를 위해서는 돈을 쓰지 않고 있다.

국립의대야 정부가 인건비의 상당부분을 지원하기 때문에 여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사립의대의 경우 제대로된 의학교육 전담 교수도 없는 곳이 태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사례를 분석하고 의학교육 관련 외국의 석학들을 초청하여 세미나를 열고 있다.

매일 환자를 보고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면서도 저녁시간엔 의전원 준비를 위해 연구실에 불을 밝히고 있다. 그런 노력에 힘을 실어주고 격려를 해주어야 하는 것이 좋은 학장(CEO)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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