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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공공의료, 민간과의 조화를 고민한다

시론 공공의료, 민간과의 조화를 고민한다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1.3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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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향(광주광역시 서구 보건소장)

지난 2005년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관심 속에 첫발을 내딛은 도시보건지소가 2년여의 시범사업기간을 종료하고 본 사업으로 진입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도시보건지소를 바라보는 눈길이 곱지 만은 않다. 1956년 보건소법의 제정으로 첫 발을 내딛은 보건소는 1980년 농어촌 보건지소 및 보건진료소 설치, 2005년 도시 보건지소 설치 등을 거쳐 오면서 60여 년의 세월을 국민의 건강과 함께 호흡해 왔다.

그동안 많은 국가 보건정책을 수행해 오면서 도시보건지소 사업만큼 의료기관으로부터 불신을 받았던 예는 없었던 듯싶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의 시작은 1977년 의료보험과 함께 의료보호가 도입되면서부터라고 본다. 의료보호 대상자에 대한 진료기피, 농어촌 지역의 의료인력 부족 등이 표면화되자 농어촌에 보건지소와 보건진료소를 설치하여 진료업무를 시작한 이래, 전 국민 의료보험이 완성될 무렵에는 상대적으로 의료문턱이 높아진 저소득층을 위해 도시의 보건소도 진료기능을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일부 지방의회 의원들이 보건소를 수익기관으로 여겨 수익창출 수단으로 진료기능을 강화하는 곳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이후 건강증진사업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보건소의 진료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기는 하였지만 민간 의료기관의 숫자가 점차 늘어나는 상황에서 진료업무를 수행하는 보건지소가 도시지역까지 설치된다고 하니 민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보건소는 의료법상 의료기관이며, 지역보건법상 공공보건기관인 동시에 지방자치법상 자치단체장의 직속기관인 지방행정 조직이라는 것이다. 또한  향후 지방자치는 더욱 공고해 질 것이다. 즉 중앙정부는 국가 보건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지방정부는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여 사업수행 방식을 결정함으로써 국가보건사업의 목적을 달성해 나가는 자치행정 사례가 점차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도시보건지소가 바로 그 사례이다.

지방자치제가 공고해져 갈 무렵에 탄생된 도시보건지소 사업은 처음부터 획일화된 모습으로 출발하지 않았다. 중앙정부가 의료취약 계층의 건강형평성 제고와 질병예방에 목적을 두고 도시보건지소를 설치하였다는 것은 필수사업으로 선정된 영역을 통해서 충분히 확인이 가능하다. 방문보건, 재활보건, 만성질환관리 사업을 필수사업으로 하되 지역사회 자원과 협력하여 이를 수행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을 뿐, 사업의 접근방식과 필수사업 외의 선택사업은 시범지역 자율에 맡겼다. 도시보건지소 사업을 수행하게 된 시범지역에서는 다양한 주민들의 요구를 수렴하고 공급역량(보건소와 협력 가능한 유관기관 및 민간기관의 역량)을 평가하였으며, 자치단체장의 의지 등을 반영하여 각 지역별로 사업수행 내용과 방식을 결정하였다. 그래서 시범지역별로 사업수행 양상이 달리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예방활동과 진료를 무자르듯이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보건사업의 특성상 외래 진료실을 설치했다고 해서 도시보건지소의 당초 목적을 훼손하였다고 단정지을 수만은 없는 것이 지역의 현실이다. 여기서 우리지역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도시보건지소문제 해법에 대한 단서를 함께 찾아보고자  한다.

우리 지역은 저소득층이 밀집되어 있다고는 하나 민간의료기관이 충분이 존재하고 있고 도시보건지소의 필수사업에 준하여 최소 인력이 배치되었으므로 외래진료는 개설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나 방문진료를 실시한다 하더라도 외래진료 없이 만성질환관리, 재활보건사업을 수행하려면 지역 내 민간의료기관의 지원과 협조가 반드시 필요했다. 더구나 "보건소장이 의사라서 동료 의사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까지 받으면서 시작한 사업이었기 때문에 지역 내 민간의원의 협조를 끌어 내야하는 것은 필수 선결과제였다.

그러나 협조요청 결과 '결사반대'에 부딪히고 보니 난감해 질 수밖에 없었다. 이때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주신 분이 계셨으니, 바로 우리 지역 의사회장님이셨다. 사업취지와 수행계획을 들으시고 필수사업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을 약속하셨다. 이후 회장님은 지역 내 원장님과 간담회 자리를 주선해 주셨을 뿐 아니라 '우리지역에서 민간과 공공의 협력 모델을 멋지게 한 번 만들어 보자'면서 신뢰를 끝까지 저버리지 않으셨다.

물론 그 과정에서 주민들과 단체장의 진료 요구도 몇 차례 있었으나 도시보건지소의 설치목적을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한 결과 주민과 자치단체장을 납득시킬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도 자치단체장을 만나는 등  의사회장님께서 중요한 역할을 해 주셨고, 우호적인 태도로 돌아선 주위 원장님들 또한 우리에게는 큰 힘이 되어주셨다.

농촌의 보건지소가 무의촌 해소를 위한 것이었다면 도시의 보건지소는 건강불평등과 민간-공공 간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의료기관이 이익을 창출해야만 하는 우리의 보건의료체계 하에서 민간과 공공이 협력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민간과 공공의 협력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회장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던 바로 그 신뢰감이 도시보건지소라는 화두를 푸는데 중요한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그 신뢰감은 상호간에 보여주어야 할 덕목임을 전제로 한다.

(김성렬 전 광주광역시 서구의사회장님께서는 위암으로 1년여의 투병생활 끝에 2007년 11월에 사망하셨습니다. 지면을 빌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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