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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과의 소모적인 경쟁 피해야

민간과의 소모적인 경쟁 피해야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1.3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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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홍(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법제이사)

필자가 처음 배치된 보건지소에는 혈압계·말초 혈당측정기·체온기·이경·설압자가 사용할 수 있는 진단기기의 전부였다. 보건지소 내원 환자들은 고혈압·당뇨·관절염·두드러기·천식 및 가벼운 호흡기 질환 등이 대부분이었으나 별다른 진단기기가 없어 문진과 이학적 검사를 통해 질환을 추정하고 투약하면서 경과관찰을 했다. 고혈압 환자 중에는 심부전 증상을 호소하는 이가 많았으나 초음파 검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므로 임상적 추정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간혹 디곡신을 카피해서 지소에서 타다드시는 심부전 환자가 구토 등의 증상이 있을 땐 포타슘 등 혈액검사를 할 수 없어 겁이 덜컥나곤 했다.

시골의 노인 환자들은 교육 수준이 낮고 문맹도 상당수 있어 복용법을 확실히 주지시켜도 순응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혈당치가 들쑥날쑥하여 당화혈색소 측정이 절실하기도 했지만 지소에서는 꿈만 같은 일이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저렴한 진료비만을 이유로 보건지소를 내원하지만 지소에서는 가벼운 감기나 근골격계 질환 등 경증 질환의 처방 위주로 진료가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보건복지부는 공공의료 서비스의 30% 확대라는 참여정부의 공약 아래 감사원의 사업타당성 재검토 지시와 의료계의 꾸준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시형 보건지소 설립을 강행하고 있다. 2008년 94억원의 예산안을 편성하여 첨단 설비를 갖춘 도시형 보건지소 13개소를 확충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인구가 밀집된 도시는 이미 풍부한 민간 의료기관이 있음에도 정부는 보건사업에만 주안점을 두지 않고 일반 진료기능을 갖춘 보건지소를 신축하여 진료비를 할인함으로써 민간의료기관과 불공정 거래를 스스로 자행하고 있다. 결국 의료제공취약 계층의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애초 보건기관의 의료서비스 제공 의도와는 다르게 각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보건기관 진료비 할인 등의 조례를 제정함에 따라 경증 질환과 다수의 보건기관 이용률이 높아져 우리나라 연간 외래 이용횟수는 12.3회로 OECD 평균의 두배를 상회하고 있다.

보건기관에 의한 지역 사회의 1차 의료지원은 보건기관의 주 사업이 아닌 민간부문이 부족한 경우와 보완적 관계에 있으며 민간부문이 전혀 없는 경우에만 주도적 관계가 성립한다. 아직도 민간 의료기관이 없는 농어촌 등의 의료취약지역의 보건기관은 설비의 낙후로 지역 주민에게 진정한 의미의 보건의료서비스 제공에 충실하다고 말할 수 없다. 보건지소에서의 1차 의료기능은 단순한 의료의 제공보다는 총체적인 보건사업의 지원 기능을 의미하므로 앞으로 민간 의료기관과 소모적인 경쟁보다는 보완적인 관계에서 국민건강을 위해 보건지소의 제 기능을 확실히 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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