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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지정제 폐지'재정 안정'이 전제다
당연지정제 폐지'재정 안정'이 전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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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2.1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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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충헌( KBS 의학전문 기자)

이명박 당선인은 최근 인수위원회로부터 국정과제를 보고 받는 자리에서 의료 산업화를 언급했다. 우리나라에선 관심 밖에 있는 의료 산업이 해외에선 5백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보건은 국민의 안전 차원을 넘어 이젠 신산업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헬스케어를 바이오나 관광산업과 연계해 활성화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책을 주문했다.

이처럼 차기 정부가 의료 산업화를 강조하면서 보건의료 정책에 일대 전환이 예상된다. 새 정부에 대한 보건의료계의 기대도 크다. 그동안 규제 위주의 건강보험 시스템 때문에 주눅이 들었던 의사들이 이젠 어깨를 펴고 조금씩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새 정부의 의료 산업화 추진에 맞춰 이참에 기존 시스템을 뒤엎고 새판을 한번 짜 보자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이다. 대다수의 의사들은 건강보험제도에 대해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건강보험제도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함께 30년이란 짧은 시간에 압축 성장을 했다. 적은 비용으로 전 국민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려다 보니 정부는 저수가 정책을 폈고, 의사들은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의료비 지출을 줄인다는 명목 하에 진료를 규격화하고, 실사와 삭감을 반복하는 정부의 태도에 의사들의 자존심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다수 의사들은 건강보험 제도에 대한 심정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다. 공룡처럼 비대한 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의사들이 틀을 한번 크게 흔들어보고 싶은 게 사실이다. 이런 틈을 파고드는 것이 당연 지정제 폐지 주장이다. 차기 정부 또한 지금의 건강보험제도 틀 안에선 의료를  산업화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당연 지정제 폐지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젠 의료에서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규제를 완화해 서비스 경쟁을 촉진시킬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당연 지정제 폐지를 검토하는 것은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한다. 하지만, 당연 지정제 폐지는 미칠 파장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거친 뒤 조심스럽게 추진되어야 한다. 우선은 지금의 건강보험제도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살펴봐야 한다. 당연 지정제가 폐지되면 일부 경쟁력 있는 의사들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고급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을 만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런 서비스를 커버해 주는 민간의료 보험이 생기고, 중산층 이상의 국민들은 이런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할 것이다. 이들은 건강보험과 민간보험의 이중 부담을 지는 셈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서비스가 뒤쳐지는 건강보험에 대해 저항감을 갖게 된다. 결국 틀은 깨지지 않더라도 건강보험의 재정 안정성이 상당히 흔들리게 될 개연성이 있다.

의사들끼리의 경쟁도 걱정이다. 지금은 건강보험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경쟁하면 되지만, 이런 보호막이 사라지는 순간, 의사들은 거친 황야에서 늑대나 하이에나와 상대해야 될지도 모른다. 무한경쟁에 내던져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더욱이 보험자인 건강보험공단이 요양기관을 선택하게 된다면 의사들은 더 피곤해진다. 탈락한 의사들은 의료시장에서 퇴출돼 오갈 데 없는 형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매년 보험자가 진료의 질과 서비스를 평가해 일정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병원과는 건강보험 계약을 하지 않는다. 

당연 지정제 폐지의 전제는 튼튼한 건강보험이다. 건강보험 재정 안정을 이뤄 지속성이 보장되어야 의료 제도 개편을 논할 수 있다. 건강보험은 지금도 하루 13억 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 지정제가 폐지된다면 건강보험은 3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논의의 핵심은 보험자인 건강보험공단의 구조조정과 적절한 보험료 인상, 진료비 급증을 막기 위한 지불제도 개편 등이다. 건강보험의 지속성이라는 토대 위에 의료 산업화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의료제도 개선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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