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응급의료윤리, 하루 빨리 제정돼야
시론 응급의료윤리, 하루 빨리 제정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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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2.1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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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지훈(부산백병원 응급의학과 R4)

대학병원의 응급실은 또 하나의 전쟁터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병들고 아파하며 응급실을 찾아 든다. 그 중에서는 의식 없이 혼수상태로 내원한 환자도 있고 걸어서 들어와 단순 열상의 치료만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죽음에 임박한 환자와 힘겨운 싸움을 치르기도 한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문득문득 맞닥뜨리는 당혹감의 이면에는 응급환자에 대한 의학적 결정을 따라다니는 윤리적 결정의 어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응급의료윤리는 의료윤리의 특수한 형태로만 인식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의료윤리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윤리적 사안들을 다루고 있다. 의료윤리의 네 가지 큰 원칙 중 제일 중요시 되는 자율성 존중의 원칙에서도 응급 상황에서 환자의 자율성이 어느 선까지 존중되어야 하는지, 혹은 환자의 의사결정능력의 여부에 대한 평가, 의식이 없는 환자에 대한 보호자의 의학적 권유에 반하는 요구 등 많은 다양한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뿐 아니라 심폐소생술 시작 혹은 금지 요구 등의 안락사와 관련된 문제, 자살 시도 환자에 대한 관여, 응급실에서의 환자의 폭력, 응급실 침상 혹은 의료 장비 부족으로 인한 진료 차질, 병원 전 단계에서 응급의료 제공자와 환자 혹은 보호자와의 마찰, 그리고 전문직 윤리와 관련하여 병원 전 단계에서의 환자의 부적절한 이송, 타 병원으로부터 부적절하게 전원 되어 온 환자에 대한 대응 등의 다양한 현실적인 딜레마가 산재한다. 이 밖에도 응급의료 영역에서의 연구 윤리 등 응급의료와 관련된 윤리적 주제는 이루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이다. 요컨대 응급의료윤리는 의학윤리교육 분야의 세 갈레라고 할 수 있는 의료윤리, 생명윤리, 의학 전문직윤리를 모두 아우르는 접점지역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응급의료윤리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중요하고 시급한 이유는 언급된 다양한 윤리적 딜레마가 바로 응급의료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의 경우, 일일 내원환자는 적게는 40~50명에서 많게는 200~300명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많은 환자와 급성 통증으로 인한 심리적 긴장상태, 응급실과 병원의 다양한 상황적 요소 가운데에서 환자와 의사, 혹은 환자와 다른 응급의료 제공자와의 마찰과 윤리적 갈등은 불거져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의학적 결정능력뿐만 아니라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인성이 바탕이 된 윤리적 갈등 해결 능력은 필수적인 자질인 것이다. 그러면 현재 응급의학과 의사는 이러한 윤리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안타깝게도 대답은 부정적이다. 의대 수업 중에 의료윤리, 혹은 프로페셔널리즘 강의는 아직도 지식위주이며, 실제 의료 현장과는 거리감이 있는 경우가 많아 총체적인 의학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인성과 자질을 체득하기에는 무리이다. 게다가 전공의가 되어서도 의료윤리, 특히 응급의료 윤리에 대하여 접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보라매병원 사건과 그 이후의 여러 건의 존엄사, 혹은 안락사 관련 소송으로 더욱 더 방어적인 진료를 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윤리적 갈등 상황에서 병원윤리위원회의 결정적 역할이 권장되지만 이 역시 죽음이 임박한 환자 앞에서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응급상황에서는 도움을 얻을 수 없어 갈등해결에 어려움을 주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응급의료윤리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절실한 시점인 것이다. 필자는 응급의학과 전공의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하고 부산백병원 응급의학과의 여러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응급의료 윤리에 대한 인식조사' 라는 논문을 최근 발표했다. 이 논문은 응급의학과 의사의 이러한 윤리적 의사결정능력에 대한 인식정도와 대표적인 응급의료 윤리사례에 대한 반응 양상을 설문조사한 것이다. 조사 결과 중 주의를 끄는 점은 응급의학과 의사가 가져야할 자질을 묻는 질문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항목이 '응급환자에 대한 민첩성'과 '소명의식', '신중함' 등으로 나타나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민첩하고 신중하며 소명의식을 지닌 의사' 상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설문의 사례 질문 중 임종을 앞둔 고령의 환자가 심폐소생술 거부(DNR)를 요구하지만 반대로 그의 가족은 가능한 모든 치료를 원하는 윤리적 갈등 상황 속에서 과반수의 응답자는 환자의 DNR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그 대부분의 이유로서 '법적인 분쟁의 가능성'이라고 답해 의료소송에 대한 두려움이 윤리적 의사결정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반적 윤리 인식에 대한 질문에서는 응답자의 81%가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 중 의료 윤리적 문제로 고민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74%는 '진료 중 윤리적 의사결정에 대한 교육 및 훈련의 필요성을 느낀 적이 있다'고 하였다. 이는 이후 응급의료윤리에 대한 연구와 지침마련 및 전공의를 상대로 한 의료윤리 교육을 통해 상당부분 개선의 여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행히 현재 대한응급의학회 차원에서 응급의료 관련 윤리규약 개발을 위해 패널 토의 등을 진행 중이라고 하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응급의학과 의사를 위한 윤리뿐만 아니라 응급구조사 및 구급대원을 위한 윤리 규약이 제정되고 이것이 현장에서의 실제적인 지침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다면 응급의료의 일선에서 생길 수 있는 윤리적 갈등의 해결에 많은 도움을 주게 될 것이기에 앞으로의 추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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