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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현대의학과 전통의학

시론 현대의학과 전통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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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2.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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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병구(부산시의사회 부회장)

지구상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전통의학중의 하나로서 중의학(中醫學)과 더불어 체계화가 가장 잘 되어있는 것이 한의학(韓醫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구에서 발달된 현대의학이 들어오면서 한의학은 사양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어 대한민국 특유의 정치바람을 타고 대학설립의 붐이 일 때에 몇몇 한의과대학이 신설되면서 한의학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다시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1800년대 중반 이후 서구에서는 자연과학이 발달하면서 전통의학이 현대의학으로 탈바꿈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철저한 실험정신의 바탕 위에서 엄격한 검증을 통해 전통의학의 허(虛)와 실(實)을 밝히고 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접목시킨 결과였다. 그것은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이들의 열망과 어떤 비판도 겸허히 수용하는 연구자들의 학문적 자세에 대한 보답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현대의학은 현대과학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첨단의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지금도 현대의학의 맹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리고 현대의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분야가 아직 많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뿐 아니라 현대의학을 향해 앞으로도 계속 끊임없는 숙제가 주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에 대한 모든 해결책은 흘러간 전통의학으로 회귀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 새로운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야 할 것들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현대의학은 전문화와 세분화로 인하여 환자 개개인에 대한 총체적 사고가 어려울 뿐 아니라 각종 검사결과와 수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높고 감성적 접근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것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전통의학을 동경하는 이유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현대의학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의학과 의술의 모든 영역을 한사람의 의사가 습득하기에는 능력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가끔 혹자는 아프리카나 호주 원주민들, 또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지닌 전통의술의 우수성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그들만의 비방(秘方)을 일부 가졌다 할지라도 현대의학의 혜택을 받는 이들보다 그들이 더 훌륭한 의술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현대의학은 과학이 낳은 사생아가 아니라 과학이 피워내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현대의학을 맹종하거나 단순히 현대의학을 예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는 일에 현대의학이 가장 근접하여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함이다.

서구의 전통의학이 과학의 발달을 등에 업고 현대의학으로 눈부시게 발전해오는 동안 동양의 전통의학은 비방(秘方)이라는 이름으로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 거의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 국내에서는 전통의학인 한의학이 현대의학과 대등한 위치에서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묻고 싶다.

거북선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우리 조상의 뛰어난 발명품이지만 오늘날 첨단장비를 갖춘 항공모함 앞에서는 초라한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이미 오래 전에 전통의학의 품을 떠나 첨단의학을 맛본 사람들을 향하여 새삼스레 전통의학이 그 본래의 모습으로 다가서려 할 때 세계 어느 나라에서 그것을 수용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현대의학을 버리고 전통의학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하는 국가나 국민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한의학이 독자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미 수십 년 전에 과학적인 접근방식에 의해 연구 분석되는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 한의학은 한의학 자체로서가 아니라 서구의 전통의학이 밟아온 발전의 길을 걷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각없는 인물들이 한의학의 우수성을 주장하며 한의학 육성책만 부르짖는 바람에 한의학은 여전히 현대과학의 울타리 밖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한의학은 그 본래의 틀을 깨뜨리고 현대과학 앞에 자신을 발가벗기는 수단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모든 한약재와 한의학적 치료행위는 과학적인 바탕 위에서 객관적인 검증을 거쳐 그 효용성과 안전성이 입증되어야만 할 것이며, 그런 후에는 모든 치료자가 그 지식을 공유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지적 재산권은 당연히 보호되어야 하겠지만 비방이라는 이름으로 진실이 감추어지거나 접근성이 제한되어서는 곤란하다. 하루속히 한약재에 숨겨져 있는 유효성분들을 밝혀서 신약개발의 소재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그와 같은 기회는 외국의 거대 제약회사나 연구기관들에 의해 모두 선점당해 버리게 될 것이다.

다행히 아직도 현대의학이 미치지 못한 영역으로 침구학이라는 분야가 남아있다. 한의학 고유의 영역이기는 하지만 이 또한 학문적 검증을 거쳐야만 할 부분이다. 그리고 이들을 세계시장에 내보내기 위해서는 실험적 바탕 위에서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체계가 확립되어야 할 것이며 그 내용 역시 공개되어야만 할 것이다.

충분한 학문적 검증을 거치기도 전에 전통과 경험이라는 명분으로 국민들에게 전통의학을 권장하는 것이 과연 국민과 국가를 위해 올바른 태도인지? 그리고 과학이라는 잣대를 거부하고 한의학과 한약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의학의 세계화가 과연 가능한 일인지도 다시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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