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29 21:36 (금)
시론 지정기탁제 성패 의협회원에 달렸다
시론 지정기탁제 성패 의협회원에 달렸다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3.10 09:10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유승흠(한국의학원 이사장)

2월 26일 한국의학원·한국의학학술지원재단·한국제약협회 등 의약관련 3개 단체가 제약사의 의학관련 학회 지원방식을 지정기탁제로 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자리에는 공정거래위원장·보건의료 분야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의장·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상임집행위원 등 3명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지난 해 중반부터 의사와 의료기관에 대한 제약사의 각종 리베이트와 기부금 등이 사회문제화됐다. 90년대 초에도 한동안 시끄럽게 매스컴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고 두세 해 전에도 비슷한 문제가 불거졌다가 가라 앉았다. 이번에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계속 언론에 오르내렸고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발표 시기를 몇 차례 늦추면서까지 깊이 파고 들었다. 제약사 십여 군데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적을 받았고, 제약사별로 차이는 있지만 수십억 원의 벌금을 낸 회사도 있었다.

그동안 개인 또는 병원이 제약사로부터 기부금을 받기도 했고, 학회들도 제약사의 지원을 받아서 여유있게 학회를 운영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이번에는 양해각서까지 체결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경제사회적 여건의 변화 때문이다. 근래에 우리나라 최대 재벌에 대한 특검을 비롯하여 국무위원 후보자에 대한 엄격한 도덕성 요구 등에서 보듯 사회가 엄청난 변혁을 겪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한 세대 전에 제약사와 의료계와의 밀월(?)이 끝났다. 흔히 말하는 좋은 세월은 갔고 윤리강령(code of ethics, code of conduct)이 제정되어 실행되고 있다. 세계적인 다국적 제약사들은 본사의 윤리코드를 적용하여 의사에게 주는 선물 가격의 상한선을 50달러로 제한하고 있다. 한 때 우리나라 상황과 비슷했던 일본에서도 1980년대부터 거론되기 시작하더니,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선진국의 윤리코드에 접근하게 되었다.

제약사의 의학계 지원은 양면성이 있다. 제약사의 지원으로 국제학회에 참석하거나 장학금을 받아서 공부해 새로운 의학 지식과 기술을 습득, 국민 건강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면이다. 학술진흥재단 등 공공기관에서 받기 힘든 임상연구 또는 기구의 개발 등으로 세계를 상대로 수익을 발생할 수 있다면 이는 바람직한 산학협동이다.

문제는 다른 분야와 달리 의사가 제약사에 대하여 우월적 지위에 있다는 점에서 제약사의 지원이 대가성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공학 교수가 전자회사로부터 대형 연구비를 꾸준히 받아서 국제적인 특허권을 획득하였다면 산업훈장을 받는다. 공학한림원의 경우에는 기업의 기부금이 많아서 재정적인 여유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의학 관련 학회는 대가성과 우월적 지위라는 두 가지 굴레가 씌워져 있음을 어찌하랴. 그렇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방안은 사회복지공동모금에서 찾을 수 있다. 각종 사회복지단체에서는 기부를 받기 위하여 기업을 수없이 탐방하고 기업은 기업대로 귀찮을 정도로 요청을 받는데 즈음하여 수년 전부터 공동모금제도를 채택하여 좋은 성과를 얻고 있다.  이번 제약협회와의 학술활동 지원 방안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협약 체결에 즈음하여 제약계에서는 학회에 직접 주는 것에 비하여 효과가 적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이는 기우다. 학회는 개인이 아니라 특정 영역 또는 분야에 속하는 불특정 다수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정기탁제로 하였기 때문에 기탁한 제약사와 기탁 금액까지 분명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부 학회에서 제약사 측에 무리한 재정지원 요구에 어쩔 수 없어서 응하는 관례가 점차 완화될 것이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예상하기도 한다.

이번 협약에 관련되는 두 재단법인 중 한국의학원은 대한의사협회가 출연하여 1999년에 설립된 공익법인으로 2002년 이래 재정경제부가 인정한 의약계 최초의 공익성 지정기부금 단체가 되어 현재까지 의학학술활동 지원 등을 해 왔다. 의학학술지원재단은 의료장비업체인 (주)메디슨이 출연하여 2000년에 설립되었고, 2003년에 공익성 지정기부금 단체로 되어 대한의학회의 학술활동을 지원해오고 있다.

학회 측의 자세도 변화돼야 하고, 변화되리라고 생각한다. 아직 지원방식을 구체화하지는 않았지만 협약 내용에 학술대회 비용의 일부는 학회가 자체 조달할 것을 명시했다. 학회 및 학술대회 운영 시 제약사 지원 의존도를 점차 낮추면서 검소하게 치르려는 자세는 시대적인 여망이다.

연구비를 편법으로 집행하던 시대가 있었으나 이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는가. 이번 협약을 계기로 어느 학회가 무슨 제약사로부터 얼마의 지원금을 받았는지 공개되는 시대가 되었기에 씀씀이가 달라질 것이 예상된다. 지정기부금이므로 사용 내역이 밝혀지게 되고 이는 평가를 받는 셈이 된다.

학회에 대한 지정기탁제도에 대해 일부 제약사는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이번 제도의 정착이 전적으로 의협회원들에게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학회의 대표를 위시한 임원과 회원이 모두 의협 회원이며 설령 제약사가 학회지원금을 직접 학회에 준다고 할 때 이를 지정 재단들에게 기탁하도록 하면 성공적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정기탁제의 정착으로 학회 운영이 한층 더 알차고, 의학계와 제약사와의 산학협동이 활성화됨으로써 우리나라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을 믿어마지 않는 바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