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수 의협 보험부회장
4월 1일부로 시행되는 DUR 시스템의 도입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수도 없이 정부와 협의를 해왔고, 많은 부분 개선이 된 바 있으나 아직도 중요한 부분에서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규제를 남기고 있어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 판단된다. 전문가의 자율적 책임을 존중하는 가운데 더욱 더 발전시켜 가야 할 전산프로그램을 지나친 강제 규정들과 무분별한 월권적 간섭으로 제도에 대한 반발이 극심할 것으로 사료된다. 이 제도의 법적 근간이 되는 청구소프트웨어 검사 기준 관련 고시를 중심으로 문제점을 검토해본다. |
1. 청구프로그램 및 진료기록프로그램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사전 인준 받아야 하는 규정은 월권적 규제이다.
청구 시스템이 적절한 청구를 위한 조건을 지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든 요양기관은 기준에 맞게 청구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개별기관이 사용하는 프로그램까지 심평원으로부터 인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지나친 규제이다.
심평원이 개별요양기관의 진료비 청구서를 자신들의 규정대로 문서·디스켓·EDI 등의 방식으로 받을 수는 있지만, 개별요양기관이 사비용으로 구입해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까지 자신들의 규정에 맞는지 검사한다는 것은 부당한 간섭이다.
보건복지가족부와 심평원은 현실적으로 수용 가능한 기준만 고시하면 될 것이다. 개별요양기관의 전산프로그램까지 검사할 권한은 없는 것으로 사료된다. 개인의 사적 소유물까지 검사를 한다는 고시는 지나친 규제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청구프로그램이 아닌, 요양기관이 자체적으로 개발해 혹은 구입해 사용하는 진료내역을 기록하는 시스템(EMR)에 대해서까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는 것은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청구프로그램 및 진료기록시스템에 대한 인증제의 시행을 준비하고 있다. 현행 고시에 따라 시행되고 있는 심평원의 청구소프트웨어 검사 및 인정기준은 개별 사용자들을 대표할 수 있는 민간의료단체들에 이관돼야 한다.
2. 매일 심평원 중앙센터에 연결해 개정내역을 다운 받아야 한다는 규정은 처방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지나친 월권적 규제이다.
정부는 건강보험관련 각종 고시사항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관련 당사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행정부담을 덜고자 개별요양기관이 심평원에 인터넷으로 들어가 변경사항을 전산으로 다운받아야 한다고 강제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이다. 더구나 매일 진료시작 전에 심평원 전산에 들어가 자료를 다운 받아 사용해야한다는 것은 지나치다.
DUR 관련 전산프로그램은 엄밀한 의미에서 청구프로그램이 아닌 개별요양기관의 진료기록시스템이다. 진료내용의 사적 기록 방식에 대해 정부가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적절한 행정집행이라기 보다는 공권력의 무분별한 간섭이다.
심평원에 청구명세서를 제출하는 것은 진료비를 지불 받기 위한 것이지 진료행위에 대한 보고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3. 실시간 혹은 매일 EDI로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에 대해서
개별요양기관이 진료기록시스템으로는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데 고시는 인터넷의 사용을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고시는 요양기관의 현실과 행정적·경제적 부담을 지나치게 소홀히 여기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진료기록시스템(EMR)은 진료내역의 사적기록 방식이다. 기록방식을 사용해야 할 때 인터넷을 꼭 사용해야 한다는 강제는 부당한 간섭이다.
청구 시스템의 조건에 대한 규정이라면 매 청구시 관련자료를 첨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실시간 혹은 매일 보고해야 할 긴급성도 없다. 보고 자료의 내용을 심사기구가 긴급히 알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진료시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되고, 또 처방전에도 명기되는 사항이며 매주 혹은 매월 청구시 보고되는 사항을 긴급히 실시간 또는 매일 전송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급성전염성질환자를 신속히 보고해야 한다든지, 마약사범이라서 긴급히 보고되어야 한다든지 등등의 긴급보고사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항은 현재에도 관할 보건소 및 경찰서 등에 긴급보고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일개 심사기구가 진료비 심사차원에서 시급성을 다툴 이유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안에 대해 긴급보고를 강제하는 것은 행정편의를 지나치게 남용하는 것이다.
별도의 보고가 꼭 필요한 경우라면 서면·디스켓·EDI 등 다양한 방법의 선택성이 존중돼야 한다. 꼭 EDI 방식으로만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그동안 국민건강에 꼭 필요한 조치라는 명분하에 전문가의 자율성을 지나치게 훼손하는 각종 규제와 고시들이 남발돼 왔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제도개혁이 요청되는 이 때 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한 제도가 무엇인지 새롭게 검토돼야 할 시점이라 생각된다.
DUR 시스템은 올바르게 활용하면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을 획기적으로 이루는 신기원이 될 것이다. 이러한 진전은 강제적 규제에서 벗어나 전문가의 자율성을 존중할 때 최대한 발전될 수 있다.
현행 고시된 병용금기·연령금기·배수처방·중복처방 등에 관한 사안만이 아니라 처방된 약물의 상호간의 부작용, 노인 환자에서 연령과 질환에 다른 약제의 선택, 임신 주수에 따라 처방약의 안전성 검토 등 많은 관련 의학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자율적인 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이미 동일병원 내에서 진료과 간에 투약의 중복 상태를 개선해 진료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이다. 정부는 민간의료기관의 이러한 성과를 지원하고 격려를 해야 한다.
의협은 2년 전부터 '의약품정보원'을 설립해 이같은 자율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의약품정보원'은 서울대 약리학교실과 함께 구축해 현재 정보화 DB를 생성하려고 준비 중이다. 기존의 식약청·심평원·약사회 및 각 제약사의 의약품 정보뿐만 아니라, 보다 전문적인 학술적 자료들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약제들의 병합사용에 따른 각종 위해성에 대한 연구와 정보들 또한 구축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를 활용하여, 앞으로 '의약품 부작용 신고센터'를 대한의사협회 홈페이지(kma.org)에 구축하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약제의 새로운 문제점들을 찾아내며, 국민들이 보다 안전하게 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전문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노력도 기울이려는 것이다.
의협은 의약품의 안전성과 위해성에 관한 다양한 연구와 제반 학술적 활동들을 지원하고, 정보의 교류를 확산하는 제반 정책들을 시행할 것이다. 각 전문과목 별 처방의 질 향상을 위한 각종 노력을 기울이고, 기타 올바른 처방을 저해하는 각종 제도적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려 한다.
규제를 통해 의약품사용의 적정화를 도모하겠다는 정부의 행정목표는 환상이다. 이제라도 전근대적 강박증으로부터 벗어나 개방적 행정원리가 도입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