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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의료정책을 보면서

새 정부의 의료정책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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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3.1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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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훈(동아일보 기자)

며칠 전 평소 너나들이를 할 정도로 친하게 지내는 의사 A씨와 소주잔을 기울일 때였다. A씨가 대뜸 이렇게 물었다. "이번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에 대해 기사를 써 보는 게 어때?"

평소 정부 정책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 그 의도가 궁금했다. "갑자기 왜 정책에 관심을 가지세요?"

그제야 A씨는 속내를 털어놨다. 전국에 몇 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는데,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방향을 확실히 알아야 영리법인을 준비해야 할지 경영지원회사(MSO)를 먼저 만들어야 할지 결정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A씨는 이어 "영리의료법인은 정말 허용되기는 하는 거야?"라고 물었다.

많은 의사들이 아마도 A씨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잠시 참여정부 때의 상황을 돌아보자. 그 때도 영리의료법인의 허용과 실손형 민영의료보험 확대, 공보험과 사보험 간의 질병정보 공유 등이 논의됐었다. 그러나 유시민 복지부 장관이 제동을 걸었기 때문에 흐리마리 무산돼버렸다. 분배를 중요하게 여기던 참여정부가 영리법인 허용을 추진했을 정도라면 의료 산업화는 그 때부터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정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때부터 의료의 산업화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그리고 지난주 초에는 명쾌한 입장이 기획재정부로부터 터져 나왔다.

재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의료서비스의 경쟁력 강화방안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참여정부에서 논의됐던 정책 뿐 아니라 건강보험의 급여부분까지 보장해주는 민영건강보험을 도입하는 등 파격적인 정책방향을 보고했다. 재정부는 관계부처와 전문가로 TF를 구성하고 10월까지는 종합대책을 마련해 법안을 국회에 상정하겠다는 일정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정책보고를 접하면서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책 보고에 의료정책의 주무부처인 복지부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복지부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예정된 25일에는 복지부의 '복안'을 알 수 있겠지만.

지금 복지부 안팎에서는 장관과 차관이 모두 외부 인사인데다 보건의료분야의 경험이 적은 점을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또 이번 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복지부가 '거대' 경제부처와 대등한 입장에서 주장을 펼 수 없을 거라며 걱정하는 사람도 여럿 봤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정부가 시장주의를 강조하다 보니 그에 맞게 정책 방향을 수정하는 게 쉽지 않다"고 한 숨을 내쉬기도 했다.

재정부의 발표는 곧 의료계의 핫이슈가 됐다. 의료계가 원했던 방향대로 정책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작정 좋아만 할 것은 아니다. 복지부 장관도 임명되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발표다. 약간 비약하자면 엄마도 없는 상황에서 내 밥그릇에 퍼야 할 밥을 힘센 아이가 빼앗은 꼴이 아닌가. 앞으로 불거질 갈등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즉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시민단체들은 재정부의 발표를 통해 현 정부의 보건의료정책방향이 드러났다며 멀지 않아 국민저항에 부닥칠 것이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들은 정부가 시장주의만 내세우며 의료산업화를 강행하고 있으며 그 결과 국민건강권이 심각하게 침해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재정부는 심드렁하고 복지부는 말이 없다.

필자는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많은 부분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갈등을 조정하지 않고 새로운 정책을 강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복지부가 나서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 의료계도 속단하기는 이르다.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면 김만 샐 뿐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필자는 소주를 단번에 마신 뒤 A씨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영리법인은 분명 허용될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혼란기예요. 조정 과정에서 어느 방향으로 튈지는 모릅니다. 준비를 하되 너무 앞서 나가지는 마세요."  corekim@donga.com

월요컬럼 필진이 바뀝니다. 동아일보 김상훈기자에 이어 24일(월)자 부터 조선일보 김동섭기자와 중앙일보 김정수기자가 격주로 집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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