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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15:21 (금)
의료계에 첫 발을 내딛으며
의료계에 첫 발을 내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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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3.17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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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현(강남성모병원 인턴)

새내기 의사들이 이제 우리도 가방 메고 학교 간다고 마냥 신나하는 아이처럼 의료계에 발을 내딛으려 합니다.

자기 반을 찾지 못해 복도에서 서성이는 아이, 만성 반복성 복통을 호소하며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 학교에 가는 것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모든 것에 열심인 아이, 친구들이랑 노는 재미로 학교에 가는 아이 등 다양한 모습들을 보이겠지요?

어떤 친구들이랑 어울리느냐, 어떤 은사를 만나느냐,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이제 6년이라는 의과대학 생활에 종지부를 찍지만, 또 다시 배움의 장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새내기 의사들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새로운 배움의 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무럭무럭 자라날지 참으로 기대됩니다.

무자년 정월 초하루 집안의 어르신들이 "6년동안 공부하느라 수고했어. 의사되는 것 축하해"라는 인사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의과대학 생활 6년을 떠올려 봅니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꽃 옆에서> 한 구절처럼, 봄부터 그리 울었던 소쩍새의 수많은 울음들이 저를 키워 냈습니다. 6년을 변함없는 눈길로 바라 봐주고 믿어 준 가족들, 100쪽을 넘긴다 할지라도 하나하나 열거하고 싶은 동기들, 병원 실습을 돌며 만난 다양한 선배님들, 마음을 찡 울리는 말씀들을 던지시는 교수님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보자고 발버둥치다가 외부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 이러한 만남 속에서 영감을 얻고 생각을 키우고 세계를 세워나갔습니다. 어리석게도 저 혼자 큰 줄 알았습니다. 저 혼자 수고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선배님들.

학교에서 최고 선배로 살았던 고작 1년으로 굳어져버린 마음을 부끄럽게 내려 놓으며, 이제 말랑말랑해진 새로운 마음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설레이는 마음으로 한발짝씩 나아갑니다.

김남조 시인의 <마라토너>를 떠올려봅니다.

'달리는 마라토너를 보라/아침에 입은 새 옷이/백년 풍진에서처럼 낡아지고/겨우 두 시간에/저들도 백년을 살아낸다.'

하얀 가운을 당당하게 걸쳤다고 해서, 가슴에 '의사 OOO' 명찰을 눈부시게 달았다고 해서 진짜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나날들에는 고난과 시련도 틀림없이 있겠지요. 그때마다 포기하거나 좌절하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두 시간에 백년을 살아내는 열정을 조심스레 품어 봅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기원해봅니다.
정신 없는 일상에서도 이 열정이 희미해지지 않기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새로움을 창조해 낼 수 있기를. 하루하루를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지 않기를. 겨울이 오고 봄이 오는 것도 모른 채 두꺼운 겨울 코트만을 고집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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