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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수난곡과 숭례문
마태수난곡과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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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3.1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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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윤주(서울 관악·희망찬안과 병원의사)

의사들 중에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처럼 아는 것 없이 그냥 음악 듣는 게 좋아 쫓아다니기만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예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쓰거나 작가로 이름을 날리는 주변 선배들을 보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그저 좁은 진료실, 좁은 시야로만 살아가지 않고 더 넓은 세계를 볼 줄 알고 더 넓은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또 의사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에 다녀온 바흐의 마태수난곡 연주회는 나에게 또 다른 각성제가 되었다. 음반으로만 듣던 것을 이렇게 직접 들을 수 있었다는 기쁨, '이렇게 아름답고 슬픈 곡이었구나'하는 새삼스러운 설레임 때문에 연주가 끝났어도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고 뜨거운 눈시울과 가슴을 진정시켜야 했던 것이다. 언제나처럼 눈앞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면 '내가 살아있구나'하는 느낌이 들어 참으로 좋다. 그야말로 천사들이 노래하는가 싶게 아름다웠던 합창단과 성악가들의 선율은 좌중을 압도했다.

1400년대에 만들어진 합창과 관현악곡이 오랜 시간 이어져 내려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시공을 초월한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더구나 이 곡은 작곡가며 지휘자였던 멘델스존이 고서점에서 발견하지 않았다면 아예 존재 조차 몰랐을 곡이므로 더욱 의미가 있다. 음악을 듣는 내내 예수의 시대와 바흐의 시대, 그리고 지금을 살고 있는 나… 마치 모든 시간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4차원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처럼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비단 음악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그림과 율동, 건축 그리고 글도 그러하다. 인간의 모든 감정과 생각이 무엇으로든 표현될 수 있고 또 이것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 안에 어쩌면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바흐와 멘델스존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숭례문이 떠올랐다. 너무도 허망하게 불타버린 우리 국보 1호. 누군가는 이렇게 아름다운 곡을 찾아내 후손에게 남겨주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몇 백 년의 시간 속에서도 견고했던 문화 유산의 화재에 가슴 아파하기도 한다.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제는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게 된 숭례문의 모습. 평소에는 관심도 갖지 않고 그저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건축물로만 여겼는데 경찰과 인부들의 고함소리 속에 삭막한 비닐덮개와 바리케이트만이 감싸고 있는 숭례문을 보니, 비단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만 슬픈 일이 아니라 몇 백 년 뒤를 살아갈 후대에게도 애통하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줄 끈을 잃어버린 것 같은. 과연 인생을 살면서 무엇이 소중한 것이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지금도 아련히 귓가에 울려 퍼지는 바흐의 선율을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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