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생활이다!"

"'산'은 생활이다!"

  • 김은아 기자 eak@kma.org
  • 승인 2008.03.21 11:35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경기( 아주의대 교수 아주대병원 신경외과)

암벽 등반 마니아 조경기 아주의대 교수

"그 놈의 정 때문에……."

조경기 아주의대 교수(아주대병원 신경외과)가 죽음을 무릅쓰고 산을 오르는 이유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유난히 '정(情)'이 많다.

"산이나 암벽을 오르는 사람들 사이에는 형제애보다 진한 끈끈한 정이 흐릅니다. 위험천만한 등정길에서 자일을 통해 서로와 서로가 연결돼 있으니, 같이 산을 오르는 상대방은 내가 생명을 맡긴 사람이니까요."

조 교수에게 '산'은 생활이다. 밤에 암벽을 오르는 '야바위'나 험난한 바위산 등정을 즐기지만, 평소에도 늘 산은 가까이에 있다.

"어디를 가든 배낭과 신발을 갖고 다녀요. 밤 11시가 넘어서 퇴근하다가도 '달이 참 밝구나' 싶으면 그 길로 인근 광교산이라도 다녀오지요. 왜 그렇게 산에 가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달이 좋아서, 산이 좋아서지요."

그는 '산을 좋아하는 의사'외에도 '등반원정대 팀닥터'로도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엄홍길·박영석·한왕용 씨 등 일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내로라하는 산악인들의 건강을 곁에서 돌봤다. '그랜드슬램'이란 전세계 8000m이상 높이의 14개산을 모두 오르는 데 성공한 것을 말한다. 이래뵈도 젊은 시절엔 전문 산악인을 꿈꾸던 그였다.

"전공의 때 무의촌 진료를 해야 했던 적이 있었는데, 우연인지 운명인지 지리산 깊은 산골에 배정받게 된 겁니다. 이거다 싶었죠. 매일 산길을 10km씩 오르내리면서 에베레스트산 초등의 꿈을 키웠어요. 그런데 어느날 라디오에서 고상돈 씨가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다는 소식이 나오는 게 아닙니까. 그때부터 산악인이 되겠다는 꿈을 접고 의학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산악인들에게는 '욕심은 금물'이라는 말이 불문율처럼 내려져온다. 특히 위험한 산일수록 욕심을 부리다 자칫 한 순간에 비명횡사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그 '욕심'이야말로 산악인들로 하여금 산을 오르게 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무리한 산행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조 교수에게도 어쩔 수없이 욕심을 부렸던 순간이 있다. '죽음의 산'이란 별명이 붙여진 'K2'를 올랐을 때가 바로 그 순간이다.

"엄홍길 대장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 위한 마지막 산으로 K2를 간다며 저에게 팀닥터를 제의해왔어요. 두 달쯤 휴가를 내야했는데 고민 끝에 가기로 했죠. 원래 팀닥터는 베이스캠프에만 있어야 하는데, 사전에 '올라갈 수 있을 때까지 올라간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말이죠."

"집사람은 아직도 모르고 있지만, 사실 유서까지 써두고 떠났다"는 그를 지금 만날 수 있는 건 기적이나 다름없을 지도 모른다. 많은 수의 대원과 도우미를 거느리고도 오르기 쉽지 않다는 산을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홀홀단신으로 7500m까지 올라갔으니 말이다. 유연한 몸놀림과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저히 50대 후반이라고 볼 수 없는 체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10년째 해오고 있는 에어로빅 덕분. 아줌마나 하는 운동 아니냐는 짓궂은 질문에 "유연하고 균형잡힌 몸을 만드는 데 이보다 좋은 운동을 찾지 못했다"는 게 그의 대답이다. 그러면서도 "아무래도 뒤에서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설친다고 흉보지 않겠냐"며 허허 웃는다.

그는 바쁘다. 워낙 장시간 수술이 많아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하기에도 바쁜데, 매년 해오고 있는 몽골 의료봉사활동에 이어 이제 막 북한 봉사활동도 시작할 참이다. 그럼에도 부지런히 산을 찾으려면 그에게 "생활"의 지혜가 필요할 것만 같다.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