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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물고기 잡는 법' 가르쳐준다"

"북한에 '물고기 잡는 법' 가르쳐준다"

  • 김은아 기자 eak@kma.org
  • 승인 2008.03.3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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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호 의협 남북의료협력위원회 위원장

최근 북한과 남한의 창구는 굳게 닫혔다. 엊그제는 개성 공단에서 우리측 직원들이 철수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 문이 언제 다시 열리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유에 대해선 설왕설래하지만, 여하튼 이번 사례를 통해 북한은 아직까지도 우리에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한 셈이다. 최근 들어 '대북 강경론'이 다시 고개를 들게 된 것만 봐도 그렇다.
그럼에도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하는 까닭은 분명히 있다. 의료지원 사업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퍼주기식으로 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핵무기뿐'이라는 비판론을, '좋은 의료장비와 약을 가져다줘봤자 쓸 수도 없을텐데'라는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인호 위원장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 북한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는 김 위원장.
"의사들이 좀 보수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 대북의료지원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저도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북한 사람들을 보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그들에게 의료는 '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더라 이겁니다."

김 위원장은 최근 4박 5일 일정으로 평양을 다녀왔다. 북한 사리원인민병원 현대화 및 약솜공장 건립 등을 지원하기 위한 사전준비 형태로 실태조사를 다녀왔다.

이번 방북은 지난해 11월 남북총리회담의 합의사항 가운데 보건의료 분야 지원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것으로, 보건복지가족부·통일부·한국보건산업진흥원·질병관리본부·식품의약품안전청 등의 정부측 관계자들이 주도했다.

방북단에는 김 위원장을 비롯 전염병 전문가로서 오명돈 서울의대 교수(서울대병원 감염내과) 등 의사 두 명이 포함됐다.

사리원인민병원은 평양에서 차로 45분 거리에 있는 도 단위 3차의료기관으로, 760여 병상의 꽤 큰 규모다. 심전도기·초음파·X-ray 등 기본적인 의료기기들을 갖추고 있지만, 30여년 전에 소련에서 건너온 기기들이라 열악한 상황이다.

"이번 방북은 의미가 있었어요. 정부측에서 민간단체가 아닌, 대한의사협회라는 공식 전문가 단체에 협조를 요청해왔거든요. 앞으로 의협은 대북의료지원 사업에서 의료인력 교육을 담당하게 될 겁니다."

그동안 민간단체 차원의 대북의료지원은 꾸준히 이뤄져왔다.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를 제공하거나 수액공장을 지어주는 등의 하드웨어 지원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북한 의사들 스스로가 양질의 진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의료인력에 대한 교육훈련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CT·MRI 같은 고가 의료장비나 고가약 등을 1회성으로 제공한다고 해서 북한 사람들이 건강해지는 건 아닐 겁니다. 남한 의사가 그곳에 상주해서 진료할 수 있는 상황도 아직은 못 되구요. 결국 북한 의사들의 수준을 높임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북한 주민들의 건강 수준을 올릴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를테면 물고기를 잡아 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의사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특히 영아사망률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북한에는 무엇보다 모자보건 프로그램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낀 김 위원장은 국내 유명 대학병원들의 협조를 얻는 방안 등 이미 머릿속에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두고 있다. 북한에서 혹여 부담이라도 느낄까봐 강의식 교육 보다는 토론식 교육으로 진행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계획한 대로 실천에 옮기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

"우리 쪽에서는 고가 의료장비 보다는 진단검사 장비 등 기본적인 의료장비와 인력교육 지원을 생각하고 있는데, 북한 정부 관계자들은 고가 의료장비나 3세대 항생제를 요구해오는 등 시각차이가 있어 안타깝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차차 조율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서울시 송파구에서 소아과 개원의로 활약하고 있기도 한 김 위원장은 빠듯한 진료 시간을 쪼개 의료 분야 자문의로서 복지부며 통일부며 이리저리 뛰어 다닌다. 대북의료지원은 "의사의 시대적 사명"이라는 생각에서다.

"우리 민족의 소원은 '통일' 아닙니까. 어차피 통일이 되면 북한 의사들이 진료 요원으로 활동해야 하는 건데, 지금부터 남북한의 보건의료 수준 차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좋은 거지요. 꼭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남한에서는 요즘 '의료쇼핑'이라는 말까지 등장하는 마당에, 약이 없고 기술이 부족해 충분히 살릴 수 있는 환자들이 죽어간다면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의사들이 발벗고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의사가 진정한 '건강 지킴이'라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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