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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DRG 이슈화에 대한 유감

시론 DRG 이슈화에 대한 유감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4.02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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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영(대한산부인과학회 보험위원장)

 2003년 정부가 도입하려다 철회한 포괄수가제(DRG)가 최근 다시 추진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고 있어 우려를 감출 수 없다.

DRG를 실시하려는 정부의 논리는 이렇다. 일단 현재 행위별 수가제는 ?의료비 상승 ?진료비 청구심사 업무 과중 ?의료인과 보험자간 마찰 ?의료서비스 왜곡 등 문제점이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DRG 도입이 필요하단 주장이다. 또 최근 몇 년간 의원과 병원에서 DRG 참여율이 60% 정도로 늘고 있다는 사실을 예로 들며 의료공급자 대부분이 원하고 있는 제도란 점도 부각시키고 있다.

정부의 논리를 하나씩 반박하기에 앞서 우선 왜 DRG 참여율이 높은가 속내를 살펴보자. DRG를 적용할 경우 본인부담 액수는 10%로 행위별 수가제에 비해 적다. 이것은 의원급 의료기관에게 있어 매우 달콤한 유혹이다. 여기에 심사조정(삭감)을 받지 않는다는 편의성 때문에 많은 의료기관이 DRG를 선택한 측면도 있다. 즉 이들이 DRG를 적극 받아들인 것은 제도에 찬성해서라기 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우리는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이런 '단기적'인 장점들은 '장기적'으로 어떻게 될까. 일단 많은 전문가들은 DRG가 전면 실시될 경우 완전히 다른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DRG는 1983년 미국에서 시작된 제도다. 하지만 미국의 DRG는 한국의 것과 크게 다르다. 일단 미국은 메디케어(Medicare·65세 이상 노인에 대한 의료보장제도)에서만 DRG를 적용했으며 진료비용(병원 관리료)만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 분명 다르다. 또 미국은 의사업무량과 진료비용, 위험도 수가가 완전히 분류돼 있다. 따라서 견제와 균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다.

더욱 중요한 차이는 미국이 우리나라에 비해 의료 과소비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의료행위를 조절해도 문제 없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은 모든 행위별 수가가 가혹할 정도로 통제를 받고 있으므로 이미 최소한의 의료행위만 이루어지고 있다.

또 현행 행위별 수가의 상대가치 점수가 원가의 73.9%만 보전하고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인데 이 수가에 다시 DRG를 적용하려는 것은 의료를 하향 평준화로 내몰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DRG는 국민이 양질의 의료를 선택할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환자의 존엄성과 국가의 미래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현재 많은 환자들이 한국의 의료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고 외국으로 빠져 나가는 현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DRG는 의학발전에 역행하는 제도란 측면도 있다. 이윤 추구라는 동기가 자연스러운 민간 의료기관의 경우 의료 질 저하는 불가피해 보인다. DRG 전면 실시는 진료의 폭을 일정 가격으로 제한하는 규격화를 초래할 뿐 아니라 특정 질병에 대한 새로운 이론이나 치료법, 첨단 의료용구 적용, 신기술에 대한 연구 의욕을 상실시킬 수 있다.

중증환자 진료 기피현상도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이미 미국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국내 시범사업을 통해서도 중환자들에 대한 DRG 수가가 낮아 중환자를 진료하는 기관들이 손실을 입고 있으며, 이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들의 DRG 제도 참여율이 저조한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DRG에 참여하고 있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국가가 운영하는 국립의료원 뿐이다.

결국 중증환자 진료에 대한 합리적 보상이 전제되지 않을 경우, 손실을 피하기 위한 중환자 기피현상을 막기 어렵고 이로 인해 여러 임상적 문제가 생길 경우 의료계가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또 DRG 진료비 심사청구시 업무가 간소화된다는 것도 실제와는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비교적 단순한 수술인 충수 절제술의 경우, 가능한 수의 종류가 무려 1200가지에 달하기 때문에 행위별 수가에 비해 진료비 청구와 심사절차가 절대 간소화 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DRG 제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under service'를 감시할 새로운 조직과 인원이 필요하게 돼 행정업무가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7가지 질환에 대한 DRG가 전면 실시될 경우 완전히 상반된 지불제도가 한 병원에 공존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병원의 한 부서는 행위별 수가제를 다른 부서는 DRG 제도에 기반한 업무를 보게 되므로 부서의 분리 운영이 불가피하다.

이런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DRG를 왜 갑자기 전면 시행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현재 개원의들의 DRG 참여율이 높은 편이라고는 하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들이 DRG의 기본 원리를 선호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현실을 정부는 다시한번 되새겨 봐야 한다.

의료계도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이제라도 파급효과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객관적인 데이터를 도출하고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아울러 이런 상황을 여론화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역할도 시급한 때다. 이번에도 역시 정확한 데이터를 제시하지 못하고 정부에 무조건 반대만 하는 의료계란 인상을 주게 될까 심히 우려된다. 의협·병협·학회가 나서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들은 정말로 임상의 현실을 모를 수 있다. DRG 전면시행이 과거의 의약분업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의료계 모두 중지를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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