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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좋은 의사'와 '유명한 의사'

시론 '좋은 의사'와 '유명한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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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4.1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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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휘(성애병원 PET센터 소장)

좋은 의사를 양의(良醫)라 하고, 유명한 의사를 명의(名醫)라 한다. 사람들이 잘 알고 있듯이 명의는 '이름이 드러난 의사'라는 뜻이고, 양의는 말 그대로 '좋은 의사'라는 뜻이다. 양의나 명의 모두 사회가 바라고 아끼는 존재이다. 양의의 양(良)자에는 어질다는 뜻 말고 착하고 진실하다는 뜻도 담겨 있다. 그리고 명의의 명(名)자는 저녁 夕(석)자 밑에 입구 口(구)자를 붙여 만든 글씨이다. 옥편을 보면, '名'은 저녁이 되어 날이 어두워지면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알아 보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헛기침을 하면서 말소리로 "나는 김 아무개요", "나는 이 아무개요"라고 자기를 밝히는 데서 유래했다. 그러고 보니 '명'은 남이 나를 알아보라고 내가 나를 초들어 일컫는 말인 셈이다.

그렇듯, 유명한 사람은 남이 알아내기도 하고 스스로가 밝히기도 해서 생겨난다. 세상이 개명되어서 인지, 요즘 신문이나 잡지를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노라면, '명'자 붙은 게 많은데 놀란다. 명의, 명약, 유명처방, 유명병원에서 시작하여 명사, 명문학교, 명가, 명품, 명차를 거쳐 유명 점쟁이, 죽은 사람을 위한 명당자리 등등 명자 붙은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뿐만 아니다. 세상은 지금 온통 최첨단, 최상, 최신, 최초, 최고, 제일, 극대화 등 최상급 형용사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내 최초, 국내 최대, 동양 최초, 동양 최대, 세계최초도 자주 듣는 말이다. 대학이나 병원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남에게 뒤질세라 선두 다툼질을 하고 있다. 심지어 동양 제일 세계 수준의 병원을 만들기 위해 외국교수, 외국의사를 모셔오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지를 않은가. 우리는 지금 참으로 '높은 것 (至高)'에 사용할 마지막 말을 탕진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사람들은 그것을 '발이 땅에 닿지 않은 채, 허공을 쳐다보며 달려가는 현대인'의 불안과 초조에 사로잡힌 모습이라고 한 숨을 쉰다.

다행히 예지는 우리에게 중용(中庸)을 가르친다. 그것은 더도 덜도 아닌, 바른 균형을 잡은 상태 즉, 이상(理想)에의 도달을 말한다. 중용은 우리의 이상이 이루어지는 절정의 상태를 이르는 말이며, 그 상태는 결코 '명(名)'자나 '최(最)'자, 잘못 쓴 외국어, 새로 만든 어설픈 말로는 설명할 수는 없는 경지인 것이다. '좋다'는 중용을 대신하는 쓰기 편하고 듣기 편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일상 사용하는 '좋다'는 무엇인가를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이해하고 흡족하며 고맙게 받아드리는 심상(心象)을 표현하는 쉽고도 정확한 말이다. '좋다'는 인간의 욕구가 지나치거나 도리에 벗어나는 것을 막아주는 방패이기도 하다.  그래서 좋은 의사, 좋은 시설, 좋은 약, 좋은 병원, 좋은 책, 좋은 신문, 좋은 대학이 유명한 의사, 최첨단 시설, 최신 약, 21세기 첨단 병원, 베스트셀러, 일류대학보다 한결 부드럽고 친근하고 정확하게 다가오는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신(神)이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고 나서 하신 말씀이 "좋다"이지 않았던가.

우리 말 '좋다'에는 자그마치 30가지가 넘는 그윽하고 깊은 뜻이 담겨있다. 그 중 몇 개를 추려보면 훌륭하다, 흐뭇하다, 즐겁다, 아름답다, 뛰어나다, 알맞다, 적당하다, 순하다, 부드럽다, 넉넉하다, 상서롭다 등등. 아시다시피 '유명'을 영어로 'famous'라고 한다. 그것은 known to 또는 recognized by many people 정도의 말이다. '좋다'와 같이 'good'에도 참으로 많은 뜻이 있다고 한다. honorable, admirable, morally excellent, reliable, pleasing, superior, righteous 등등.

그렇게 알고 보면, '좋다'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편하고 쉽게 쓸 수 있으면서도 균형이 잘 잡혀 있어 이상의 경지에 다가가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명'의 뜻에는 '이름이 있다'와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뿐이다.  어쩐지 허전한 메아리처럼 덧없이 느껴진다.

새삼, '이름'이란 저녁 어둠 속에서 헛기침을 해가면서 '나를 나타내는 신호(信號)'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좋은 의사가 되는 길은 결코 어렵지 않다. 그 비결 아닌 비결은 아다시피 무엇보다도 환자의 아픔과 호소를 가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그리고 그 고통의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법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어느 누구도 혼자만의 지식과 경험으로 모든 병을 다스리지는 못한다. 그것을 아는 일이 좋은 의사의 첫 걸음이라고 배웠다. 우리는 드물지 않게 스스로의 지식의 부족함을 알고 책을 들춰보거나 선배 후배 동료의사들에게 물어봄으로써 생각지 못했던 돌파구를 찾고 보람을 느낀다. 그 길을 실천하는 의사, 그렇게 해서 환자를 살리고 돌보아주는 의사, 그 의사가 좋은 의사이다. 거기에 고통을 함께 나눈다면, 그 의사는 참으로 좋은 의사인 것이다. 이름난 의사를 명의라고 한다. 생명은 귀하고 고통은 견디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환자는 걸린 병을 알고, 좋은 치료와 따뜻한 위안을 받고,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명의를 찾아 헤맨다.

그들의 소원은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명의 또한 모든 병을 알고 고쳐주지를 못한다. 문득, 얼마 전 한 일간지 의학담당 기자의 글에서 읽은 이야기 하나가 생각난다. 우리끼리의 농담 중에 "쉽게 명의가 되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대수롭지 않은 병을 무섭게 느끼게 하고 나서 그 병을 고쳐주면 이름이 난다는 것. 그것은 우스개 말이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보니 명의도 좋으나 양의가 더 많았으면 한다. 세상 어디를 가도 어렵지 않게 좋은 의사를 만날 수 있는 시절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할 따름이다. 예부터 좋은 의술, 어진 마음, 후한 인심은 요란한 이름이나 큰 목소리 없이도 팔도강산에 울려 퍼진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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