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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제도 개편 치밀한 전략 세워야

의료제도 개편 치밀한 전략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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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4.2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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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헌(KBS 의학전문기자)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과반이 넘는 의석을 차지하면서 의료계가 한껏 고무돼 있다. 각종 규제와 지나친 획일주의로 캄캄한 어둠속을 헤매던 의료계가 이제 10년 만에 신 새벽을 만났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민간의 자율성과 시장의 자유로운 경쟁을 가치로 삼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의료계는 친근한 느낌을 갖고 있다. 정서적인 호감을 넘어 기대가 큰 것이 사실이다. 이런 기대는 지난 20일 열린 제 60차 정기대의원총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복지부 관계자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엔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직접 참석해 축사를 했다.

의협 회장을 비롯해 대의원회 의장 등 간부진은 장관 참석에 대해 거듭 감사의 표시를 했다. 그간 의료계 모임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거의 참석하지 않았던 전례를 생각하면 장관 참석에 대해 의미를 두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의료계의 현 위상을 보는 것 같아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이에 화답하듯 김 장관은 한 시간 넘게 진행된 개회식 내내 자리를 지켰다.

여야를 넘어 5명의 국회의원도 참석했다. 재선에 성공한 한나라당 신상진, 김충환, 공성진 의원과 역시 재선에 성공한 민주당 백원우 의원, 재선엔 실패했지만 유승희 의원도 참석했다. 모두 의료계에 대해 친근함을 표시하며 균형 잡힌 의료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그럼, 새 정부에서 의료계의 위상은 높아질 수 있을까? 최근 '당연지정제 완화' 논란을 접하면서 의료계의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당연지정제 완화는 건강보험의 근간을 뿌리 채 흔들 수 있기 때문에 논의조차 쉽지 않다. 원칙적으로는 고려해 볼 만한 정책이지만, 현실에선 만만치 않은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데올로기적 파상공세가 이어지면서 이성적으로 정책의 장단점을 따져보는 것마저 어려워졌다. '식코'라는 영화를 내새워 프로파간다를 펼치는 시민단체 등의 파상공세에 전문가들과 정치권조차 숨을 죽이고 있는 형국이다. '식코'는 미국 민간의료보험 회사들의 횡포와 이 때문에 의료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일부 미국인들의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한 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마이클 무어의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매우 극단적인 예들을 일반화시키면서 상당한 정치적인 편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미국과 대비시키기 위해 영국의 의료제도를 소개한 부분은 상당한 왜곡을 내포하고 있다. 마치 많은 영국의사들과 영국인들이 NHS 시스템에 대해 대단히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그려 놓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다. 지나친 관료주의와 비효율성으로 인해 영국 또한 미국 못지않은 불만과 모순 때문에 의료제도 개혁이 정치 현안이 된지 오래이다.

각국의 의료제도는 나름대로의 사회적인 토대 위에서 세워졌다. 전통과 문화가 다른 만큼 의료제도도 천차만별이며 나름대로 장단점을 갖고 있다. 미국의 현실을 예로 들면서 당연지정제가 완화되면 금방이라도 건강보험이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일방적인 주장과 구호는 치열한 논의를 방해해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의료계는 치밀한 전략과 전술로 향후 의료제도 개편 논의에 대비해야 한다. 정치권이 조금 의료계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순진하게 자신을 모두 드러내선 곤란하다. 정치권은 표가 되는 정책에 대해선 호의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 대해선 냉정을 잃지 않는다. 의료계가 발전하기 위해선 그 토대인 국민들의 건강 향상에 먼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국민건강보험을 튼튼하게 하고,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대안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 섣부르게 내놓는 정책들은 오히려 의료계를 국민들과 더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 '당연지정제 완화'도 원칙적으로는 논의할 수 있는 정책이지만, 의료계가 얻을 것보다는 잃을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으로부터 멀어지면 정치권이나 정부도 의료계를 더욱 가볍게 여길 수밖에 없다. chleemd@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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