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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한다는 거
'의식'한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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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4.2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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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준호(부산의료원 가정의학과 R3)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을 헉헉대며 올라가다 하산하는 분에게 묻는다. "얼마 남았냐고…" 돌아올 대답이 뻔하다는 걸 알면서도 힘드니 자꾸 묻는다. 산은 그렇게 의식해서 올라가는 게 아니다.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가야 한다. 갈증날 때 물 한잔 마시고,  허기지면 초코파이 하나 먹고 힘내서 그렇게 올라가야 한다. 아무생각 없이 터벅터벅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어느 순간 원하는 위치에 닿아 있을 것이다. 학생 때는 학문에 뜻이 없었으니 재미있는 수업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강의 내용에 집중하고 필기하다 보면 종이 울려 바삐 다음 강의실로 갈 때도 있다. 공강시간은 수업 때와 정반대로 친구들과 몇 마디 주고받고 나면 시계바늘이 벌써 한 바퀴 돌아있다. 주말이 버티고 있는 금요일 오후 수업은 끝날 때를 기다리다 진이 다 빠진다. 강의 도중 시간을 확인하지 않기 위해 핸드폰을 꺼두는 게 오히려 편하다. 저녁에 그녀가 참석한다는 동아리 회식이라도 잡혀있다면 더욱더 시간은 멈춰버린다. 일초일초 세다보면 흑판에 양이 천마리도 더 지나간다.

며칠 전부터 혓바늘이 돋아 까끌거리더니 입가가 물러터졌다. 주말 선보러 갈 때까지 낫게 하려고 연고를 바르고 약까지 먹어 본다. 화장실 갈 때 마다 거울에 비춰보니 갈라진 틈은 더욱 커 보인다. 언제나 그렇듯 선 자리는 성과가 없고 입가는 계속 아린다. 일한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없어져 버렸다.

오늘부터 시작이라면서 병을 얻지는 않는 거 같다. 참을 정도의 불편함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악화되어 어느 순간 병이 된다. 치료도 마찬가지다. 약 한번 주고, 시술 한번 한걸로 병이 낫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꾸준한 치료를 의료진과 시간에 맡겨야 한다. 근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병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빠른 시간 내에 호전을 보이지 않으면 환자에게서 불신의 눈총이 화살이 되어 날아온다. 병에 대한 의식은 하시되 참고 기다리려 하는 의지도 필요할 거 같다. 봄이 되었고 날씨도 따뜻해 졌는데 봄꽃이 빨리 피지 않냐고 의문을 가지지 말자. 추운 겨울을 이겨내면서 꽃을 피워낼 힘을 축적해 나가는 노력은 생각하지 않고 봄이 되었으니 당연히 꽃이 피어야 한다고 재촉하니 꽃은 더 더디다. 흐드러진 벚꽃이 조명을 받으며 눈발 날리듯 흩뿌려지는 진해 중원로터리 옆 골목길을 걷고 싶어 만개일이 언제냐고 매일매일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 꽃은 때가 되면 필 것이고, 또 때가 되면 질 것이니.

새 정부가 들어서서 너무 기대가 컸었나 보다. 우리를 위해서 더 나은 정책을 발표할 것 같아 뉴스메일을 자주 확인해봐도 '실시간 진료감시'를 한다는 말도 있고, 의료보험을 사보험으로 전환한다는 말도 있어 그 폭풍 속에 내던져지는 것 아닌지 하는 걱정도 있다. 쇠고기 협상처럼 벌판에 홀로 서 있게 버려두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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