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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0 06:00 (토)
시론 새내기 의사들에게

시론 새내기 의사들에게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4.30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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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구(부산시의사회 부회장)

해마다 이맘때면 새내기 의사들이 환자와의 첫 대면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밤잠을 설치고, 새로 전문의가 된 젊은 의사들은 각자 꿈을 펼치기 위해 자신의 진료현장을 찾게 된다. 전역을 앞둔 젊은 의사들 역시 또 다른 기대에 부풀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둡기만 한 이들 후배의사들의 앞날에 대해 선배의사로서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

내 자신이 의사라는 이유로 요즘 의사들이 안고 있는 문제와 고민들, 그리고 의사들에 대한 이 사회의 인식에 대해 자주 생각해 보고는 한다. 대부분의 의사는 개인적인 학습능력과 성실도 면에서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 뿐 아니라 사회규칙과 질서에 대해 거의 언제나 순종하며 살아온 사람들임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런데 어째서 이들이 의사면허증을 받는 순간부터 금방 이기적이고 비양심적인 존재처럼 인식되고 마는가? 대부분의 의사가 정말로 그처럼 이기적이고 양심도 없는 사람들인가? 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그러한 사회적 인식에 대해 가슴이 아플 때가 많다.

이 사회가 의사들을 이러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분배에 대한 개념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언제부터인지 '의사=가진 자'라는 등식이 성립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의사는 가진 자들을 대표하는 존재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그 뿐 아니라 많은 국민이 의사는 대체로 교만하고 이기적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의사는 사회적으로 지탄받아야 할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들에 대한 이러한 시각을 단순히 사회적 인식의 탓으로만 돌릴 것인가? 그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는 의사들 스스로 자초한 바가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비록 늦기는 했지만 스스로 의사들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것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사회적으로 안정된 기반 위에서 살아가는 원로 의사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노력과 능력에 의해 부와 명예를 얻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대부분은 가진 자로서 겸손함이 부족하였고 나누는 일을 등한히 하며 살아온 것도 사실이다.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절에는 그들의 삶의 태도와는 상관없이 사회적인 대우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근래 십 수 년 사이에 의사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사회가 개방되면서 과거와 같은 의사들의 태도는 더 이상 용납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매스컴과 각종 사회단체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과거 선배의사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서 비롯된 비난의 화살이 오늘날 진료현장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젊은 의사들을 향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쉽게 피해 갈 수는 없다. 의사라는 이유 하나로 그들도 원죄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순수한 진료를 통해 얻는 수입만으로 의사는 일정한 부를 누릴 수가 있었다. 그러나 불과 수년 사이에 교과서적인 진료만으로는 생계를 꾸려가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다. 물가상승률에 비해 의료수가는 거의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매년 3700명이 넘는 새로운 의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로 인해 순수진료에 의한 수입으로 살아가기를 포기하는 의사들이 최근 4~5년 사이에 갑자기 늘어나고 있다.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지 않는 젊은 의사들은 상대적으로 더욱 열악한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냉혹한 현실은 그들이 가진 히포크라테스의 꿈을 무참하게 깨뜨리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을 정신적인 공황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참으로 어두울 수밖에 없는 의사들의 미래이며 그것은 바로 그들이 돌보아야 할 환자들의 미래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학생들은 의사가 되기 위해 아직도 의과대학으로만 몰려들고 있다. 언론이 현실을 바로 비춰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의사는 가진 자'라는 개념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부를 얻기 위한 비결은 곧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학생들 뿐 아니라 모든 학부모들의 머리 속에 박혀버린 것이다. 결국 의사가 되기 위한 진로를 택하는 젊은 인재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새로 의사면허를 받고 사회에 진출한 젊은 의사들이 오늘날 현실에서 느끼는 절망감을 그들이 알게 된다면 그들의 선택은 전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장차 의사들이 이 사회로부터 질시받고 외면당하는 원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진료일선에 있는 의사들이 꼭 알아야 할 뿐 아니라 현재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친절과 서비스'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겸손과 나누는 삶'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미 생계를 위해 순수진료를 포기한 많은 의사들을 그들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게 할 수는 있을까? 그리고 새로 배출되는 젊은 의사들의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의사로서의 꿈은 과연 이 땅에서 펼쳐질 수 있을까? 지금 의사들이 지니고 있는 원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사실 앞에서 다시 한 번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모든 열악한 현실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부끄러운 의사가 되지 말고 처음 의사의 길로 들어설 때 품었던 히포크라테스의 꿈을 언제까지나 지켜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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