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18 17:24 (목)
광우병 파동

광우병 파동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5.21 09:47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충헌(KBS 의학전문기자)

광우병 파동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고등학생들이 촛불집회를 하겠다고 나서고 정부는 교사들까지 동원해 이를 막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한 방송사의 문제 제기로 촉발된 이번 사태는 이미 과학적인 근거를 넘어서 비이성적이고 정치적인 논란으로 번졌다. 먹거리에 대해 유난히 민감한 국민정서와 집권 초부터 인사파동을 겪으면서 '강부자 내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현 정부에 대한 반감이 이번 사태의 주된 요인으로 보인다. 여기에 일부 반미 정서와 이번 사태를 이용해 정치적인 입지를 넓히려는 일부 정치 세력 등이 복잡하게 얽혀 광우병 파동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건 무엇보다 정부의 태도이다. 그간 미국과의 협상에서 줄곧 견지해 오던 입장을 돌연 바꾸어 놓고, 국민들에게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건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 아무리 한미 FTA 비준 등 중대한 외교적 현안이 있다고 하더라도 특정위험물질과 30개월 이상의 쇠고기까지 들여오기로 하는 등 예민한 부분까지 양보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광우병은 그 실체적 위험과 상관없이 국민의 우려가 대단히 클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의 소고기 협상은 좀 더 신중하게 진행됐어야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필자의 아들조차 의사인 아빠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굳이 쇠고기는 먹지 않겠다고 한다. 평소 싫은 소리를 잘 하지 않는 아내 역시 학교 급식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사용될게 뻔하다면서 분을 삭이지 않는다. 상황이 이런데도 광우병 파동에 대한 정부의 위기관리능력과 대국민 설득 능력은 부족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현재 퍼지고 있는 광우병 위험 논란은 과장된 부분이 적지 않다. 특히 인터넷에서 무차별로 확대 재생산된 '광우병 괴담'은 이성적인 설득이 파고들기 힘들 정도로 파괴적이다. 여기엔 정부가 스스로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은 채 국민 정서를 불순한 선동으로 몰아간 탓도 있다. 괜찮다고만 하는 정부의 태도는 국민의 눈에 무책임하게 비쳐 더욱 반감을 불러 일으켰다. 쇠고기를 둘러싼 안전성 논란이 정부도 더 이상 손을 쓰기 힘든 상태로 흘러가면서 중립적인 전문가의 역할이 절실해졌다.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가 더 이상 국민 건강 문제가 아닌 첨예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처럼 흘러간 상황에서 진실을 가리는 것은 전문가의 몫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안전성 논란에 대한 전문가는 누구인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질 수 있는 고도의 전문가는 다름 아닌 의사들이다. 일부 수의사들이 마치 인체에 대한 전문가인 양 언론에 앞 다퉈 나가고 있는 상황을 방기하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철저하게 과학적 근거에 기초한 전문가들의 판단이 비이성적으로 흘러가는 광우병 사태를 생산적인 논의의 장으로 끌어 들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9일 대한의사협회가 광우병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은 적절한 처사이다. 하지만, 광우병 이슈가 정점을 지나 안전성 논란에서 통상문제로 넘어가는 시점에 견해를 밝힌 것은 한 박자 늦은 아쉬움이 있다. 언론의 생리를 더 잘 알았다면 전 국민의 눈과 귀가 집중된 시점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 광우병에 대한 연구결과가 너무 적다 보니 좀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겠지만, 시기를 놓쳐 언론의 뜨거운 관심에 부응하지 못한 것은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의협이 로비 파문 등 부정적인 이슈가 아닌 전문가적 견해 등으로 관심의 초점이 된 적이 언제 있었던가? 이번이 전문가적인 위상을 한껏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물론 쇠고기 파문이 정치적 공방으로 비화돼 부담이 적지 않았겠지만, 그럴수록 의료계는 과학적 잣대로 진실만을 알리면 됐다. 알 수 없는 부분은 알 수 없다고, 위험한 부분은 위험하다고 있는 그대로 말이다. 여론의 눈치를 살피다가 혹은 정부의 입장을 생각하다가 시기를 놓친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 어렵게 견해를 내놓았는데, 혹시 용두사미로 흐른 건 아닌지 정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chleemd@kbs.co.kr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