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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합의
믿음과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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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5.2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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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혁(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기획정책이사)

서로를 믿는다는 것,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흔히 인용되는 아주 오래된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믿음의 문제는 수백 혹은 수천년 동안 반복되어 온 인류의 역사에 있어 언제나 지상과제였다.

하지만 '믿음'이라는 밝고 희망적인 단어에 대해 학문적으로 냉철하고도 계산적인 잣대를 들이대 분석해 보면, 믿는다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위험에 노출시키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이유는 자신의 믿음에 기초하여 다른 사람들이 그들만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는 누가 먼저 무기를 버릴 것인가를 두고 두 주인공이 극한 대립을 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서로 믿을 수만 있다면 위험한 무기에서 누가 먼저 손을 떼는지는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쪽이 무기를 버리는 순간부터 반대쪽은 무기를 버리지 않는 것이 어떠한 경우에도 유리한 선택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상황을 서로 잘 알기 때문에 먼저 무기를 포기하지 못하고, 모두가 바라지 않았을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게 된다.

최근 들어 여러 학문분야에서 선택과 전략에 관해 연구를 하고 있다. 상대방을 믿지 못해 발생하는 손실에 대해 최근 연구들이 제시하는 공통의 해법은 가능한 집단 및 분야별로 합의를 이루라는 것이다. 상대방의 유형을 알 수 없어서 믿고 행동하지 못하는 만큼, 믿을 수 있는 분야의 사람들끼리 모여 미리 신뢰에 관한 합의를 하는 것이다. 합의대상 집단이 큰 경우 의견의 일치점을 찾기 힘든 반면 장기적으로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소수끼리는 합의에 도달하기가 쉽고, 깨뜨리기는 쉽지 않으며, 이를 위반했을 때 제재를 가하기도 용이하다. 이러한 합의와 믿음이 실천되는 가장 기초적인 분야는 사랑과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관계다.

복잡한 현대 사회구조 하에서 합의 도출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합의 이후에 지속적으로 상대방에게 믿음을 주고, 이끌어낸 합의를 유지하기 위해 드는 노력과 비용 또한 적지 않다. 때문에 신뢰관계 구축보다는 공격적이고 경쟁적인 전략 수립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분명 공격은 최선의 방어이자 좋은 전략일 수 있고, 경쟁의 결과 또한 효율적이다. 하지만 경쟁의 결과로 나타난 효율성이 꼭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거나 타당한 것은 아니다. 앞서 예를 든 영화의 상황에 비유하자면 '너죽고 나살자'식의 힘 대결보다는 '함께 살자'가 장기적으로는 모두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모든 경우에 적용되기는 무리가 있겠지만, 문제 해결과정에서 상대방을 설득하고 믿는 협상 카드를 꺼내들 준비는 언제나 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꺼내든 카드가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조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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