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4 06:00 (수)
개원 20주년 선물

개원 20주년 선물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5.28 17:28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한미애(서울 양천 한소아청소년과의원장)

올해로 개원한지 만 20년이 되었다. 한 장소에서 20년.

병원이 잘되든 안되든 한장소에서 20년을 개원한 것은 나름 의미있는 일이라고 혼자 생각한다. 이제는 이 지역사회의 일원이라는 생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개원 10주년때는 별로 축하해주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혼자 좋아서 병원을 장식하고 파티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20주년은 하루를 넘기고 나서야 생각났고 10주년때만큼의 감동이나 기쁨이 없었다. 예전에 비해 열악해진 개원가의 현실이나 의료환경탓인지도.

부랴부랴 정신을 차려 20주년 기념품을 만들고 감사의 문구를 넣어 전단지를 인쇄했다. 기념품을 돌리기 시작하자 그래도 20년이란 세월이 새삼스러워지면서 감사의 마음과 감동이 되살아났다. 말로 축하해주는 환자 보호자들과 화분을 보내주는 보호자도 있었고, 오래전부터 다녔던 환자보호자들과는 같이 옛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다닌지 얼마 안되는 환자 보호자들은 20년이나 되었냐면서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봐 주기도 했다. 기념품도 다 소모된 어느 토요일, 진료가 끝날 시간 한 엄마가 병원문을 열고 들어섰다. 간호사에게 진료할 것이 아니라 원장님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진료실 안에서 소리를 듣고는 '내가 뭘 잘못한 일이라도 있나'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게 개원의들의 심정이다. 전화 한통에도 놀라는.

하지만 아니었다. 얼마전 와서 20주년이란 사실을 알았노라면서 큰애가 태어나자마자 선천성 심장병을 진단받고 수술받은 뒤 쭉 이 병원을 다녔는데 그애가 이제 스물 한살이라고. 그리고 언젠가 필자의 쌍둥이 아들 녀석들이 쓰던 이층침대를 필요하면 가져가시라고 병원에 내놓은 적이 있었는데, 그 침대를 가져다 쓰기도 했다며 약식 위에 잣으로 장식한 케이크를 전해주는 것이었다. 그동안 잊고 살았는데 20주년이라고 해서 감사한 마음과 축하의 마음을 담아서 아침부터 직접 만들었노라고. 그리고 일부러 퇴근시간에 맞추어 가지고 온 것이다.

평소 별 말수가 없는 조용한 성격의 엄마가 조심스레 전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곧바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별 것 아니지만 받아달라는, 그리고 드실 때는 어떻게 드시라는 자상한 설명까지 곁들인 진심에 감사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잠깐 서로 말 없이 서있는 사이 우리 두사람 사이에는 20년이란 세월이 머리속에서 지나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개원 20년의 의미와 보람을 느끼게 해준 그 분에게 감사드린다. 의사로서 살아가는 보람과 힘을 주는 것은 얄팍한 지폐가 아니라 이런 따뜻한 관계와 신뢰인 것 같다. 앞으로 또다시 개원 25주년, 개원 30주년을 맞을 수 있도록 동네의 작은 의원을 꾸준히 변함없이 지켜나갈 힘이 생긴 것 같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