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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이 파고든 자리
'괴담'이 파고든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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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6.0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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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중앙일보 기자)

기자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낄 때가 있다. 남을 믿기보다 의심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다. 미담이나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취재할 때조차 당사자의 말만 믿고 기사를 썼다간 낭패하는 경우가 이따금 있다. 미담을 가장해 일간지 광고 효과를 노린 이들, 불쌍한 어린 아이나 노인을 내세워 앵벌이처럼 이용하려는 이들이 종종 '순진한' 기자를 당황케 한다.

더군다나 공무원이나 정치인을 취재할 때는 항상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 어느 정도 친하거나 잘 안다고 생각했던 상대에게서도 뒤통수를 맞는 일이 생긴다. 어떤 중요한 사안이나 정책에 대해 확인을 부탁했을 때, 시치미를 뚝 떼며 부인하는 상대의 말을 그대로 믿고 기사화하지 않았다가, 그 다음날 그게 사실로 밝혀지거나 다른 매체에 대문짝만하게 기사화된 걸 보는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럴 때면 '기자는 함부로(?) 사람을 믿어선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우울해지곤 한다.

하긴, 반대의 경우도 있다. 공무원이나 교수들이 함께한 모임에서 무슨 얘기를 재미있게 하다가 "아참, 여기 기자 양반 있지? 말조심 해야지. 괜히 엉뚱한 기사 나올라"하며 나를 쳐다볼 때, 반 농담처럼 웃으며 하는 그 말 속에 담긴 진심을 느끼곤 한다. 별 생각 없이 인터뷰에 응했다가, 앞뒤 다 잘라내고 원하는 부분만 인용해 전체 내용을 왜곡하는 기자들 때문에 곤욕을 치룬 경험이 있는 탓이리라.    

누군가를 부러 의심하며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자녀에게 낯선 사람은 물론 동네 아저씨가 뭐라 하셔도 따라 가면 안 된다고 가르치면서, 세상 너무 각박해졌다고 한숨쉬게 되는 건 인지상정일 게다. 누군가를 믿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그만큼 누군가로 하여금 나를 믿게 만드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아무리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하다 하더라도 일단 나에게 의심의 눈초리부터 보내는 이들에게 '왜 날 못 믿느냐'고 짜증내고 윽박질러 봐야 소용없다. 차근차근 시간과 인내심을 갖고 나 자신의 진심을 솔직하게 보여주며 다가서지 않으면 상대의 믿음을 얻을 수 없다. 더군다나 스스로 무언가 걸리는 게 있고, 상대에게 고의든 아니든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한 적이 있다면, 상대의 마음을 되돌리기란 정말 지난한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 정부가 출범하기 시작한 후부터 슬금슬금 퍼지기 시작, 최근 '광우병 괴담'에 이어 회자되고 있는 '민영화 괴담'을 보면서 새삼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명박 정부가 상수도와 건강보험 등을 모두 민영화하면 하루 수돗물 값이 14만원, 감기 진료에 10만원씩 들 것이라는 이야기 말이다. 맨 처음 후배에게 그런 괴담이 인터넷에 떠돈다는 말을 들었을 땐 하도 기가 막혀 웃고 말았다. 정부에 아무리 불만이 많기로서니 사람들이 이젠 별 소설을 다 지어내는구나, 워낙 말이 안 되니 곧 사그라지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추측은 어긋났다. 뒤늦게 정부가 펄쩍펄쩍 뛰며 해명에 나섰지만 민심은 꿈쩍 않는 눈치다. CEO형 대통령의 성공론에 희망을 걸고 한 표를 찍어주긴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행적이나 한나라당 집권이 어딘지 미덥지만은 않았던 이들이 적지 않았나 보다. 그들은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영어몰입교육 등 설익은 정책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공세를 받으면 금세 뒤집는 현 정부의 태도에 '혹시나'가 '역시나'로 돌아섰을 것이고, 특히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부랴부랴 타결된 쇠고기 협상 과정을 보면서 마지막 남은 한 가닥 믿음의 실마저 끊어졌음을 느꼈을 게다. 그런데 정부는 아직도 '말도 안 되는 괴담이 떠돌고 있다'는 수준으로 이해할 뿐, 진심을 다해 그 불신을 씻어보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 '광우병 괴담' '민영화 괴담' 뿐일까. 정부와 의료단체, 의사와 한의사들, 의료단체 내부에서도 믿음이 사라진 자리는 서로에 대한 음해와 유언비어가 쉽게 파고든다. 일단 괴담이 뿌리내린 그곳에서 다시 믿음의 싹을 피우기 위해선, 우리 모두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 newsla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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