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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물러나 보기

한 걸음 물러나 보기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6.1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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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일하는 곳이 부산이다 보니 지난달 모대학 원양 실습선에 며칠 파견을 갈 기회가 생겼다. 떠나기 전에도 '쇠고기' 촛불 시위가 한창 진행이더니 돌아와서 봐도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장관 고시가 연기되어 다른 길로 접어드나 싶더니 결코 자율적이지 못할 '자율 규제'로 돌아서니 시위가 연일 계속되나 보다.

지난 10일 일과를 마치고 부산 서면의 노숙자 진료센터에 일이 있어 갔다. 6·10항쟁 기념일이라 더욱 많은 사람들이 촛불과 피켓을 들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나오는데도 도로에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병원을 벗어나 언제 이런데 참가해 보겠냐' 싶어 필자도 대열의 맨 뒤에 앉아 발언하는 시민들의 말에 귀 기울였다. 급식이 걱정된다는 고등학생, 경유값 올라 트럭 운전 못하겠다는 아저씨, 남편 월급 말고는 다 올랐다는 아주머니……. 마이크를 잡고 토해내는 말들은 '쇠고기'의 의미를 넘어서고 있었다.

서면은 부산의 심장 같은 번화가다. 17년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단다. 지나가는 고등학생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자신들의 '배후'에 관한 글이 있었는데, 그 배후가 교과서라고 했다. 얼마 전 언론과 정부에서 시위대의 배후 운운한 것에 대한 답이었으리라. 사회·정치 교과서에는 불의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항거는 정당하다고 배웠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펼쳐내는 학생들은 똑똑해 보였고, 쳐다보고 있는 필자는 답답해졌다. 여름 초입 아스팔트 더운 열기 가득한 거리에 공부하는 학생들까지 나와 있어야 하는 이 상황이 말이다.

병원 당직실에 돌아와 인터넷에 들어가니 광화문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길을 막는다고 용접한 컨테이너를 쌓고 또 다른 곳에서는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이제야 시민들과 소통을 하겠다 하여 촛불 문화제 발언대에 오르려 시도하다 '매국노'라 손가락질 당하며 쫓겨났다. 서로가 한 발 물러나지 않고, 화해의 끝은 보이지 않는 평행선 달리기를 하는 느낌이다.

지난 원양실습 파견 때를 떠올려보면, 파견생활이 필자에게 소중했던 건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하는 전공의 생활에서 잠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끝없는 대양을 배경으로 걸어온 길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 발 빼고 보니 병동에서 간호사에게 화내고, 보호자와 언쟁을 벌인 것 등의 순간들이 아쉬움으로 남으며 반성하게 됐다.

자율규제든 재협상이든 이제까지 힘들게 서로 달려온 이상 마무리를 지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물러날 사람은 물러나고, 시위 참가자들이 우려하는 부분을 명확히 막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촛불의 바다를 배경으로 참가자들도 한 발 물러서고, 원인을 만든 사람들은 세 걸음 정도 물러나 생각해보면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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