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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ADHD 약물 오남용의 진실
시론 ADHD 약물 오남용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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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6.3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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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한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서울 서초 연세정신과의원)

지난 2007년 10월 한 TV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치료제가 학습의 증진 목적으로 오남용 되고 있다'는 주제의 방송 보도가 방영되었다. 또한 치료제가 마약류에 속해 있으므로 상당히 위험한 부작용과 더불어서 의존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내용도 방영되었다. 방송 직후 수많은 환자 및 보호자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고, 이에 소아청소년 정신과를 주된 진료로 하는 각 병원 및 의원의 의사들이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ADHD 환아의 아버지들은 "이제까지 그렇게 위험한 약을 왜 처방했느냐?"면서 항의를 했고, 급기야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던 어머니들을 비난하면서 치료를 중단했던 사례들도 여럿 있었다. 또한 사회에서는 소아청소년 정신과 의사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태도도 감지되었다. 심지어 동료 의사들조차 "멀쩡한 아이들을 공부 더 잘하게 하려고 약을 먹인다면서?"라는 뼈있는 농담을 던지곤 했다. 방송의 여파는 실로 위력적이어서 이후에 방송의 내용을 근거로 국회보건복지위원회의 한 의원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유사한 보도자료 및 안내문을 배포하였다. 이에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에서는 2007년 11월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여 과연 ADHD 치료제가 일반 청소년 군에서 학습증진 목적으로 오남용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실태 조사를 진행하였다.

한국 갤럽연구소에 의뢰해 전국 주요 6개 지역의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를 대상으로 무작위 전화 설문을 했다. 1015명중에 주의집중력·학습 문제군은 23.1%였고, 심각한 주의집중력·학습 문제군은 3.9%로 나타났다. 전화 설문상의 반응이 비록 ADHD 진단을 직접적으로 의미하지는 않겠지만, 이는 ADHD 유병률에 대한 외국 자료(3∼8%, 미국소아과학회)나 국내 역학조사 자료(7.6%, 조수철 등)와 유사한 비율이었다. 주의집중력·학습 문제 개선을 위해서 약물 또는 건강기능식품을 복용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을 때 전체 1015명 중에서 115명(11.3%)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중 약물복용군은 16명으로 전체 응답자 중에서 1.6%에 불과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ADHD 치료제를 복용하는 학생은 4명 뿐이어서 전체 응답자의 0.39%였다. 한약을 복용한 학생이 10명으로 ADHD 치료제 복용 학생들의 숫자보다 더 많았다. ADHD로 의심되는 심각한 주의집중력·학습 문제 군에 해당하는 학생들 중에서 불과 10%만이 ADHD 치료제를 처방받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청소년의 주의집중력·학습 문제의 개선을 위해서 ADHD 치료제가 오남용 되고 있을 것이라는 방송 보도나 관련기관의 우려와는 반대로 오히려 ADHD의 가능성이 고려되어야 할 청소년의 상당수가 제대로 치료를 받고 있지 않다. 미국 질병관리본부에서 2003∼2004년 4∼17세 아동 청소년 가구 10만 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를 한 결과 전체 인구의 4.3%가 ADHD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었고, 평생진단율은 7.8%였다. 미국에서의 ADHD 치료율은 진단된 아동의 55%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2006년 기준 ADHD 치료제를 투여 받은 환자의 수는 약 5만 3000명이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청구자료). 2005년 서울시 소아청소년광역정신보건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ADHD 유병율은 4.7%에서 13%로 보고되었고, 이에 따르면 국내에 40∼70만 명 내외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유병률을 고려할 때 한국에서의 치료율은 10%에 불과한 실정으로 이는 이번 실태조사에서도 같은 수치로 확인되었다. 결론적으로 국내에서는 정신과에 대한 부정적 편견과 ADHD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환아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PD 저널리즘은 ADHD 치료를 받고 있는 소아청소년 환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태스크포스팀은 지난 4월 1일부터 5월 14일까지 ADHD 자녀를 둔 부모 중에서 2007년 10월의 방송을 본 200명을 대상으로 무엇이 달라졌는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방송 보도 이후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고 대답한 비율이 25%였고, 방송 보도가 ADHD 자녀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데 있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대답한 비율이 57.2%에 이르렀다. 치료 당사자인 환아들도 방송을 본 이후에 ADHD 치료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는 대답이 48.6%로 나타났다. 이는 방송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의 보도가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환아 및 보호자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히고, 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 변화를 야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송의 역할은 일반 국민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주는 데 있다. 그러나 이를 도외시한 채 시청률만 의식해 부정적인 측면을 과도하게 부풀리고 왜곡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씁쓸하다.

ADHD는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경우 단순하게 주의집중력의 개선 뿐만 아니라 충동성과 과잉행동을 줄여 줌으로써 이차적으로 대인관계를 개선시켜 소아청소년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는 질환이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에서는 앞으로 보다 더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 그리고 올바른 정보 전달을 통해서 ADHD 질환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 치료를 받아야 할 소아청소년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예정이다. 회원들을 대상으로 지난 5월 18일 ADHD 임상심화교육을 시행하였고, 앞으로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의 자질 및 윤리적 태도의 향상을 위한 추가적인 교육도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사회 일각의 의심어린 눈초리와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사회가 우리의 활동에 예전과는 다르게 많은 관심을 갖고 있음을 인식하여서 한층 더 겸손해지고 분발하여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 증진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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