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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쁜 기사만 쓰세요"

"왜 나쁜 기사만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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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6.3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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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섭 (조선일보 논설위원)

기자생활을 한 분야에서만 오래하다 보면 기사 쓰기가 두려워질 때가 많다.

오래지 않아 기사가 정확했는지 여부를 스스로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1년 이내에 다른 곳으로 출입처를 옮겨버려 어떤 기사를 썼는지조차 쉽게 잊어버리는 '뜨내기 기자'와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은 '취재 현장'을 떠났지만, 10년 이상을 건강보험에 관한 기사를 써왔다. 기자 생활 20년동안 쓴 기사 중에서 가장 애정이 많은 것이 건강보험 기사들이다. 제대로 된 기사를 써 건강보험 발전에 기여한 기사도 있다. 나름대로 정확한 기사를 쓴다고 했지만, 국민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한 경우도 있다.  

2002년 2월에 쓴 '직장 건강보험 5월에 재정파탄'기사는 건강보험 발전에 '성장통'을 치르게 한 경우다. 당시 지역건강보험은 의약분업의 여파로 2001년말에 이미 파탄상태에 들어갔고 직장건강보험도 재정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다. 하지만 재정 파탄이 곧 될 것이란 제보를 여러 곳에서 받았지만, 확인하기가 힘들었다. 건강보험료 수입과 병·의원에 지급하는 지출액 등 수지를 곰곰이 따져야 하는데 자료를 구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한달여간 자료를 이리저리 수집한 끝에 신문 1면에 기사를 쓸 수 있었다. 특히 기사가 나간 날이 복지부장관이 건강보험 재정 파탄에 대한 대책을 세워 대통령께 보고하려던 날이었다. 하지만 그 기사 때문에 대통령 보고는 전격 취소됐고 곧이어 장관·차관이 줄줄이 옷 벗게 됐다. 이 기사로 인해 국가가 건강보험 재정을 대폭 떠맡는 계기가 됐다.

기사가 오보였는지, 특종이었는지를 놓고 3년여나 씨름한 경우도 있다. 1999년말에 쓴 '건강보험 직장·지역 통합이 되면 직장인들의 보험료가 오른다'는 기사가 그런 예이다. 복지부 담당자는 "엉터리 기사"라며 반발했지만 "통합된 이후에 결과가 나올 것이므로 그때 누구 말이 맞는지 보자"고 맞섰다. 정부는 당시 통합으로 보험료 인상이 된다는 의혹을 없애기 위해 '보험료 경감' 정책을 폈다. 보험료가 올라간 사람들에게는 오른 액수를 대폭 깎아주는 바람에 오히려 통합전보다 보험료가 적게 걷혀 '진실'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결국 보험료 경감이 끝난 3년 뒤까지 계속 추적해 당시 쓴 기사 내용이 맞는 것임을 확인했다. 더 이상 속보는 쓰지 않았지만 정부 당국자와 3년여의 승부에서 이긴 것으로 만족했다. 1단짜리 기사로 사소하지만 정책방향을 제대로 세우도록 한 경우도 있다. 공무원들은 건강보험료 매길 때 매월 받는 업무추진비는 월소득에서 제외키로 했던 것을 기사화해서 포함되도록 했다. 유리알 지갑인 직장인들과 형평성이 어긋난 것을 막은 것이다. 매년 되풀이되는 '건강보험료 인상'도 복지부는 국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기사화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그 기사가 나가면 잠시 시끌벅쩍하지만, 정작 보험료가 인상돼도 큰 탈없이 지나갔다. '예방주사'를 맞았기 때문이다. 이런 효과를 본 공무원들은 이후에는 보험료 인상기사를 쓰라고 넌지시 자료를 주기도 했다.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방이 넓다는 기사로 건강보험공단과는 명예훼손 소송까지 가기도 했다. 기사에서 지적된 문제점 때문에 감사를 받거나 징계를 받는 이들도 생겨, 아직도 만나면 고개를 돌리는 이들도 있다. "왜 나쁜 기사만 쓰느냐"고 항의하는 이들도 있다. 좋은 기사와 나쁜 기사를 반반만 쓰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기자는 잘한다는 칭찬보다 나쁜 점을 들추어 사회정의를 바로 잡는데 역할이 있다. 10여년 동안 써온 기사로 건강보험 제도 발전에 일조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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