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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눈높은 환자들과 보건의료원의 한계
시론 눈높은 환자들과 보건의료원의 한계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7.0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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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진(화천군보건의료원 공중보건의)

필자는 작년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 수련을 마치고 이비인후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한 후, 서울토박이로서는 너무나 생소한 강원도 화천군에 공중보건의로 배치됐다. 지방에 개원한 선배나 공중보건의 선배들의 정겨운 경험담을 여러 차례 들었던 터라,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만나는 환자는 어떨까 내심 기대를 하면서 근무를 시작했다.

배치를 받은 곳은 화천군에 단 하나뿐인 의료기관인 화천군 보건의료원이다. '보건의료원'이라고 하면 통상적인 병원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단지, 내과·외과·소아과·산부인과 등의 외래 시설을 갖추고 있는 확장된 개념의 보건소라고 보면 된다. 이곳은 중환자실도, CT도, 야간에 응급검사를 할 수 있는 검사실도 없다. 지역사회의 건강검진 및 예방관리를 담당하고 조그만 중소병원조차 전혀 없는 이곳에서 몇몇 전문과목의 외래진료를 도맡은 곳이다. 그 중에서도 필자는 전공과는 큰 관련 없는 응급실 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화천군에서 밤에 진료를 하는 곳은 이곳 밖에 없다. 하지만 대학병원 응급실에 근무한 경험이 풍부하고 전공이 이비인후과인 터라 응급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기도확보 및 관리에는 누구보다 자신 있어 진료에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검사장비와 시설이 한계가 있는 이곳에서 응급진료를 담당하다 보니 하는 일은 야간에 비응급환자들에게 간단한 처방을 내주거나 심하지 않은 응급환자들을 치료하는 일을 주로 하고 혈액검사나 CT 등 정밀검사가 필요한 환자나 응급환자의 경우에는 응급처치 후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춘천시의 대학병원으로 후송할 수 밖에 없었다.

이곳의 공중보건의사들은 대부분 서울 또는 대도시의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 수년간 진료를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기서 진료하는데 적지 않은 답답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응급실 진료의 기본 중의 하나는 응급혈액검사인데, 그것조차 되지 않으니 의사의 직감으로만 진료를 하기에는 너무 무모하지 않은가. 하지만, 환자에게 정말 추가적인 검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으시라는 의학적인 판단을 해줄 능력이 충분히 있을 뿐 아니라, 응급상황에서 기본적인 응급조치를 시행할 수 있고, 후송 시 전원하는 병원 의사에게 환자상태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시설의 낙후함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진료를 하고 있다. 화천군 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보건의료원의 응급실은 대부분 이러한 방식의 진료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것은 공중보건의사의 능력이나 성의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보건의료원이라는 제도의 한계점 때문이라는 것은 공공의료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해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속사정을 알 리가 없는 지역주민들은 말로만 의료원이지 진료하러 가면 제대로 해주는 것도 없다고 불평하면서 보건의료원의 진료에 매우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탓은 주로 애꿎은 공중보건의사에게 돌린다. 3년만 근무하기 때문에 진료를 대충한다라는 잘못된 인식이 대부분이다. 필자도 그렇고, 여기 있는 대부분의 공중보건의사들은 절대로 진료를 대충하지 않는다. 진료는 생명을 다루는 일이므로 자신이 대충했을 경우에 따르는 책임은 엄청나다는 것을 다들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근무하고 있어 초라해 보일지 모르지만 환자 한 명 한 명을 진료할 때마다 갖는 책임감은 전국 어떤 병원의 의사와 동일하다. 이 사실들을 상당수의 환자들은 외면한 채 먼저 불만만 갖고 의료원을 안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현실이다.

의료낙후 지역에 근무하게 되면서 갖고 온 여러가지 부푼 꿈들은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들로 이미 깨진 지 오래다. 아무리 열심히 진료를 해도, 환자는 절대 만족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환자는 특히 대도시에 거주할수록 병원에서 받은 서비스에 쉽게 만족하지 못하고, 의료진의 행위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먼저 다가오는 경향이 있다. 의료진의 말 보다는 언론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말들, 주변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에 더 신뢰를 하는 심리가 있다. 병원에 오면 너도나도 검증되지 않은 의학지식을 늘어놓기 일쑤고, 의사의 진료를 쉽게 믿지 않는다. 더구나 그 의사가 30대초반의 공중보건의사라면 그 신뢰도는 훨씬 낮아진다. 놀랍게도 대도시가 아닌 이곳에서도 환자들은 거의 비슷한 진료행태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터넷 및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이제는 전국 어디서나 환자들의 눈높이가 올라간 것 같다. 그 사실을 이곳에서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들에게 보건의료원에서의 진료로 믿음을 주기 쉽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처럼 보인다. 이곳에 최첨단 의료장비를 갖춘 중소형 혹은 대형병원이 들어온다면 어떨까. 환자들은 높아진 검사비와 진료비, 혹은 길어진 대기시간으로 인해 또 다른 불만을 쏟아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눈 높아진 환자들을 과연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가. 진료비도 전혀 받지 않고 모든 검사와 진료를 받을 수 있고 대기시간도 전혀 없으며 의료진은 고도의 기술을 갖춘 유명한 전문의로만 이루어져 있는 병원이 존재한다면 그때는 환자들이 쉽게 만족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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