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디에 있을까
그는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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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7.0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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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은경(광주 중앙아동병원)

대학을 졸업하고 20년 만에 우리는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 아주 반가워했고 유쾌했다. 그러나 우리나이 벌써 중년이라 동기들 중에는 벌써 유명을 달리한 친구도 있었고 투병 중인 친구도 있었다.

예상대로 그는 오지 않았다. 학교 때 그와 제법 친했던 친구들도 있었지만 사실, 우리 중에 그의 근황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게 노트를 가끔 빌려가기도 했고 겸연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다가와 좋아하는 여자 집에 전화를 걸어서 자기를 좀 바꿔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하는 친구였다.

누군들 10대·20대가 평화롭기만 할까만 우리들의 10대 후반과 20대는 많이 혼란스러웠다. 1980년 5월에 우리 중 많은 수가 바로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대학 졸업이 가까울 무렵 6월 항쟁을 보았다. 대한민국 최연소 장기수로 오랜 기간 복역하며 고생했던 사람은 예과 때 우리의 쾌남 응원단장이었다.

그 시절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는 친구나 밖에서 구호를 외치는 친구 모두 마음이 편할 수가 없는 때였다.

내가 기다렸던 그는 '운동권 학생'은 아니었다. 환한 웃음을 가졌으며 키가 컸고 여학생들과도 곧잘 재미있게 어울리던 사람이었다.

6월 항쟁이 한창이던 때, 우리는 한창 시험 중이었는데 왜 한밤중에 최루탄이 마구 나는 시내 복판으로 그가 나갔는지 우리는 아직도 잘 모른다. 계속되는 시험 때문에 지겨웠을 수도 있고, 어쩌면 아무도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 어려운 시대를 사는 청년으로서의 괴로움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그 밤 최루탄 파편에 머리를 맞았고 응급실에 실려 들어왔다. 우리는 누운 그의 모습에 분노해서 시험을 거부하기로 결정했고 모두 가운을 입은 채 피켓을 들고 시내로 나갔다. 그 시절에 광주에서 청춘을 보낸 사람 가운데 데모행렬에 처음으로 끼어본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나는 철야농성은 물론 데모참여도 처음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딸이 데모대의 선봉에 설까봐 서울로 대학도 보낼 수 없다던 분이었고 우리 반 대다수가 참여하고 있는 철야농성이 마치 비밀방북모임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셨다.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혼자 농성장을 빠져 나오면서 나는 비겁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내 모습이 너무나 싫었다.

제 살 길을 찾아 우리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나서 한참 뒤, 뒤늦게 수련의를 시작한 그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는데 그 뒤로는 일내 그의 이야기를 모른다.

20년 만에 다시 모인 친구들은 병원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를 하면서 짐짓 심각해졌다가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장난기가 발동하고, 그렇게 그 밤이 아주 행복했다.

그런데, 그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밤이 깊어가면서 하나, 둘, 말수가 줄어가는 친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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