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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아직도 맞으면서 배우니?"

시론 "아직도 맞으면서 배우니?"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7.1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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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훈(대한전공의협의회 홍보이사)

지난 2006년 전공의에 대한 폭력이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의료계 미디어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일간지에서까지 언급이 되어 개인적으로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표현이 '의사들은 맞으며 배운다'라는 것이다.

'비'의료인들에게 의사들의 복잡한 수련체계를 설명하려면 상당히 힘이 든다. 의대를 6년 다녀야 하고, 예과와 본과가 있고(지금은 4년의 전문대학원이 있고) '인턴' 과정 1년을 수료해야 하며 4년 혹은 3년의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한 후 이른바 '펠로우'라 불리우는 전문의 자격 획득 이후의 과정(1~3년)까지 학교에서 6년(혹은 4년), 수련병원에서 4~8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설명하면 대부분 참 딱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맞으며 배운다'라는 표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바로 위와 같은 나름대로 복잡하고 긴 과정에서 연유한 것인데,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친구의 어이없는 두 개의 질문 때문이다. "그럼 너는 언제쯤 때리는 거니?" "그 긴 시간동안 맞으면서 배우면 머리에 좀 더 잘 들어오니?"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의외로 간단하다. '효율성'과 '전통'이라는 명분이 바로 그것이다. 때려야 기강이 확립되고 일의 실수가 줄어들며, 이는 예전부터 그래왔기 때문이라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이다. 나의 친구는 원색적인 표현으로 그 두 가지를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러면 2006년 이후 그러한 '효율성'과 '전통'의 원리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2006년 12월 병원신임실행위원회는 '병원 내 교육수련담당부서에 전공의 폭력 문제 상담창구 마련과 폭력 문제 예방 교육 및 캠페인 전개'와 더불어 2007년 7월 병원내의 폭력방지와 관련한 권고안을 마련하였다. 또한 대한병원협회 홈페이지 내에 전공의 병원폭력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상하 전공의 간의 폭행에 대해서는 해당 전공의에 대한 이동 수련 및 병원에 대한 조치를 결정하고 있다. 병원협회에서 내놓은 '권고안'내에는 다음과 같은 5가지의 실천 선언이 있다. 첫째, 의료인은 환자나 다른 직무의 의료계 종사자들을 인격적으로 대한다. 둘째, 의료인은 후배에 대해서 윗사람으로서 품위를 지키고 동료의식을 갖추며 모범을 보인다. 셋째, 의료인은 전문지식, 기술과 태도를 배움에 은사에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고, 가르침에 있어서 덕망과 인내로서 수행한다. 넷째, 의료인은 동료나 선후배, 진료팀원, 환자나 그 가족 보호자에게 언어폭력, 신체폭력, 성폭력을 하지 않는다. 다섯째, 의료인은 환자나 그 가족, 보호자들이 진료 중에 일으키는 충동적, 공격적 행동을 예방하기 위한 환경조성에 앞장서며, 폭력으로부터 보호 받아야 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수련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병원협회에서 전공의 폭력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언론의 압박으로 인한 결과이든지, 자체적인 위기의식이든지 간에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당연히 지켜져야 할 내용들이 명문화되었다는 것에 대해 부끄럽기도 하지만 공식적으로 '폭력'이라는 행위에 대해 심각한 인식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2년이 지난 지금도 전공의에 대한 폭력은 여전히 어두운 곳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에도 교수-전공의, 전공의-전공의에 대한 폭력문제가 몇 차례 붉어져 나왔으며 이러한 일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특성을 가진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전처럼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효율성'과 '전통'의 원리는 여전히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생명을 치료하는 의사에게 있어 '제자'와 '후배'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환자의 생명을 위해서 때려도 되는 존재, 나의 권위를 위해서 때려도 되는 존재, 빠른 일처리를 위해서 때려도 되는 존재, 일을 잘못할 경우 때려도 되는 존재, 내가 맞았으니 때려도 되는 존재, 전공의는 과연 그런 존재인 것일까?

대한민국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더 이상 그 이름 자체만으로 존경을 받는 직업이 아님에 분명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맞으면서 배우는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맡길 환자 또한 당연히 없으며, 설사 몸을 맡긴다 하더라도 불안에 떨 것이다. 맞으면서 배우는 의사가 환자를 온전한 상태에서 돌볼 수 있을 리 또한 만무하다. '폭력'이라는 행위는 기나긴 배움의 시간을 통하여 힘든 싸움을 하며 생명을 살리고 있는 우리 스스로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최악의 도구인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명문화 된 '권고안'이나 제도적 장치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변화이다. 가장 숭고해야 할 일을 가장 원시적인 행위를 통해 배우고 실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때려서(맞아서) 이루어지는 '효율성'과 때려도 되는(맞아야 하는) '전통'이 하루빨리 사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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