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문은 의료인의 보는 매체이기에 책소개 지면은 대부분 의학 관련 학술서적으로 채워진다. 물론 가끔식 전해지는 신변잡기와 다른 분야지만 너무나도 전문적이어서 신기하고 존경스러운 '외도'의 결과물도 있다. "어떻게 이 정도까지…" 뭐 이쯤되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오랜만에 그에 못지 않게 마음이 움직꺼리는 책을 만났다.
<천국의 하모니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느낌은? '사랑은 움직인다' 혹은 '사랑을 나누면 희망이 된다'랄까…. 그랬으면 한다.
이 책을 낸 편집자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우연히,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한 뭉치의 원고가 투고되었습니다. 원고 상단에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만든 출판사여서 투고합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뭐 그렇고 그런 원고겠지 생각하고 느긋한 자세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몇시간, 원고를 읽는 나의 눈은 끊이지 않는 눈물로 젖어들어갔습니다. 한하운의 '보리피리'의 서정과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의 리얼리티를 합친 것 같은 감동이었습니다.
<천국의 하모니카>에는 뭐가 담겨 있을까? 지은이는 김범석(국립보건원 공중보건의)이다. 공보의 근무를 소록도로 자원해 아내와 어린 딸이 함께 지낸 1년간의 기록이다. 이 책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편견과 선입견을 무너트린다.
소록도. 거주자 평균 연령 74세. 남들 다 있는 눈·코·입도 없고 수저 잡을 손가락도 남아 있지 않지만 그래도 의미있게 사는 사람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끼리 마음 주고, 정 주고 가족처럼 사는 사람들. 그들에게서 사랑을 배우고 가족을 느끼는 곳이다.
이 책은 한 청년의사의 아름다운 몸짓이 배어 있는 진솔한 이야기이다. 책 속의 그들은 평범한 삶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그래서 사람대접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사랑하며 베풀며 열심히 살고 있지만 한 때 멸시받았던 아픔이 채 가시지도 않은 채 지금은 잊혀져서 더욱 슬픈 우리 이웃이다.
<천국의 하모니카>에 담긴 '천국의 하모니카'를 비롯한 서른여섯편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삶과 사랑을 되새기게 한다.
자신은 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차마 남편과 헤어질 수 없어 스스로 병에 걸렸다고 속여 섬에 들어 온 할머니.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피붙이보다 더 살갑게 정을 나누는 어머니와 아들. 병에 걸린 아들을 찾아 섬에 들어와 숨어 산 어머니와 그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시신을 차마 섬에 모실 수 없어 시신을 밖으로 옮길 수 없다는 규칙을 어긴 아들…. 그들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여기 남아 있다.
제3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대상 수상자이기도 한 지은이는 <에세이문학>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한 후 한국의사수필가협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다른 저서로는 <진료실에서 못 다한 항암치료 이야기>가 있다.
진료실에서 가정에서 또 다른 곳에서 힘들고 지치고 어려울 때, 아픈 현실에 목이 메이고 마음이 찢겨 가슴 저밀 때, 세상의 모든 걱정이 다가올 때, 사랑하고 싶은 데 방법을 모를 때, 내가 누구인지 궁금할 때…. 이 책은 좋은 처방전이다(☎02-6327-3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