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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선생과 쇠고기 한 근
김 선생과 쇠고기 한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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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7.2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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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수(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부회장)

옛날 옛적 한 고을에 정육점을 운영하는 김선생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한 선비가 김선생에게 고기를 사러왔다. "백정놈아, 쇠고기 한 근만 끊어와라!" 김선생은 말없이 고기 한 근을 잘라주었다. 이 때 다른 선비가 고기를 사러왔다. "김선생님, 쇠고기 한 근만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김선생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다시 고기 한 근을 잘라 두 번째 선비에게 주었다.

그런데 두 번째 선비에게 잘라 준 쇠고기 한 근이 한 눈에 보기에도 첫 번째 선비에게 준 한 근보다 두 배는 더 많은 것이 아닌가. 그러자 첫 번째 선비는 역정을 내면서 따졌다. "야! 이 백정 놈아, 똑같은 한 근인데 왜 내 것보다 저 사람 것이 곱절이나 많은 거냐?" 이 때 김선생은 들고 있던 메스를 옷에 쓱쓱 닦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해진다. "아, 그거야 선비님에게 고기를 잘라 준 사람은 백정놈이었고, 저 선비님에게 고기를 잘라 준 사람은 김 선생님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죠."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의약품 처방 조제지원시스템(DUR)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이다. 이미 보건복지가족부의 고시 이전부터 많은 의료기관들에는 자율적으로 사용해왔던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오히려 고시 이후 심평원에서 제공한 프로그램은 전산처리의 지연이나 진료의 장애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그동안 여러 차례 진료비 청구 시 엄연히 보고되고 있는 자료를 이중으로 실시간 보고하는 데서 발생하는 행정적 낭비, 개인정보 보호 문제 및 청구소프트웨어 설치·운용에 따른 경제적 부담 등에 대해서 정부에 문제 제기를 해 왔다. 그간 정부에서는 이러한 의협의 문제 제기에 대해 성의있는 대화를 회피해 왔다.

그 결과 의협은 위헌소송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지만 정부는 여전히 "이번 고시로 인해 다소 기본권의 제한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는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당하다"는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지금 전국 각지의 의료기관에는 살인적인 저수가 체계 하에서도 묵묵히 맡은 바 일을 다해온 10만 명의 의사들이 있다. 이 분들이야 말로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낮은 비용 아래에서 높은 의료 서비스 수준을 달성한 대한민국 의료의 숨은 공로자일 것이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노고를 치하하지는 못할망정 현 의료제도의 모순에 대한 책임을 의사들에게만 떠넘기려 하고 있다. 의사들의 자율권을 무시하고 실시간 감시를 통해 모든 의료기관을 정부의 강력한 통제 하에 두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의료의 발전을 위해 열과 성을 바쳐 능동적으로 일할 동료와 장기판의 말처럼 수동적으로 움직일 기술자 중 어느 쪽이 필요한지 정부는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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