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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에 대하여

거짓말에 대하여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7.3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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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아(정신과 전문의 우리건강의학센터)

대청소를 하다보면 이래저래 마주치는 글 읽기에 정신이 팔려 하던 일을 중단하곤 한다. 며칠 전에 2년 전 동문회보에서 읽지 못한 글을 발견했고, 지방대 교수로 있는 후배의 연수기에서 필자의 염려와 비슷한 내용을 보게 되었다. 그대로 옮기자면 "미국 연수 중에 한국인들이 그렇게 거짓말을 잘 하는지 처음 느끼게 되었다. 마치 한국인은 병적인 거짓말쟁이들 같이 보였다"로 시작해서 이어지는 글에서 후배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즉 고학력 전문직으로 별 문제 없어 보이는 한국인들이 얼마 안 되는 경제적 이득을 위해 거짓말을 할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거짓말로 푼돈 버는 법'을 전수한다는 것이다.

융의 분석심리학 용어를 써서 설명하자면, 정신과 임상경험이 20년 넘은 필자에게 아직도 integration이 안 되는 shadow 중의 하나가 거짓말쟁이다. 정말 여기가 한국이어서인지는 몰라도 거짓말하는 모습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고, 그런 일상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거짓말 여부에 대해 예민해지기도 한다.

휴가 여행 중 필자 부부가 음식점에서 겪은 일이다. 에어컨 바람을 피해서 안쪽에 앉으니 직원이 "화로 고장으로 가스불이 잘 꺼진다"며 자리를 옮기라고 권유했다. 바꿔 앉은 자리에선 정면 에어컨의 찬바람이 그대로 전달되어 불만을 토로하자 에어컨을 끄겠다고 했다. 다른 손님한테 피해를 주기 싫다며 처음 자리로 가겠다고 했지만 그 직원은 굳이 에어컨을 껐다. 식사를 마치고 식대를 지불하는데 다른 직원이 퉁명스럽게 "이제 에어컨을 켜자"면서 화를 냈다. 혹시 그 직원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닐까? 서빙을 위해 오가기 귀찮으니 통로 옆에 앉게 하려고 가스불 탓을 하고,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손님의 뜻을 무시하고 에어컨을 끄더니 더위에 힘들어하는 직원들의 원망을 손님에게 돌린 것은 아닐까?

2년 전에 시댁 일로 복덕방에 들렀던 필자는 30대 중반의 어린(?) 부동산중개사가 이름도 생소한 'Up 계약서'를 요구해 놀란 적이 있다. 집을 사는 사람의 세금을 줄이기 위해 실제 거래금액보다 5천만원 정도 늘려 쓰자는 것이었다. 시댁 어른들까지 동반했던 그 자리에서 필자가 단호하게 거부하자 며칠 후에는 전화로 "천만원이라도 늘려 쓰자"며 애원을 하니 일부 젊은이들에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경우에 필자는 일제강점기 탓을 하곤 한다. 냉정한 모습으로 무섭도록 다그치는 일본인의 기세에 눌린 조선인이 생존을 위해 거짓말을 반복하다가 습성이 된 것 같다고. 하지만 해방 후 세대에게 목숨 때문에 거짓말이 불가피했던 경우가 얼마나 될까? 오히려 사적 이익을 위한 직장인의 거짓말은 타인과 환경에 심각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실력과 성실함 대신 거짓말로 쉽게 기회를 잡는 '불편한 시스템'이 되지 않으려면 리더를 포함한 구성원 다수의 자각과 세심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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