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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영리병원 무산시킨 민심 잘 읽어야
제주도 영리병원 무산시킨 민심 잘 읽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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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8.0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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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중 (한겨레신문 의료전문기자)

국내 자본도 주식회사형 영리병원을 세울 수 있도록 추진하던 이른바 제주도 영리병원이 도민들의 반대로 '일단은' 물거품이 됐다. '일단은'이라는 단서를 붙인 이유는 제주도를 비롯해 다른 곳에서 언제 다시 추진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도민 여론조사에서 과반을 넘기면 영리병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뒤 지난 24~25일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결과는 찬성 비율이 과반을 훨씬 못 미친 38.2%인데 비해 반대 의사를 보인 사람들의 비율은 39.9%로 찬성보다 높게 나왔다. 설문 문항에 대해 문제 제기가 많았던 1차 조사 때의 약 70% 찬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번 여론 조사 결과로 곧 입법 예고될 제주도특별자치도법에서 영리병원 설립 관련된 내용은 포함되지 않기로 했다. 다만 김태환 제주지사가 "여건이 성숙되면 도민 의견 수렴과 충분한 토론을 거쳐 추진하겠다"고 밝혀 불씨는 남아 있는 셈이다. 시민단체들의 반응은 이번 여론 조사 결과에 대해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의료 민영화 및 국내 영리병원 저지 제주대책위는 물론 건강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의료 민영화를 반대하는 촛불 민심의 승리"라며 "이명박 정부는 의료 영리화 정책을 접고, 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등 의료 공공성 정책을 즉각 시행할 것"을 주문했다.

영리 의료법인 즉 병원에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 투자가 가능해지는 병원을 허용해 달라는 목소리는 꽤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근래에 들어서는 참여정부 시절, '의료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추진되기도 했으며, 이를 뒷받침해 주는 중·소형 전문병원들도 꽤 생겨났다.

자본투자가 가능해지고, 투자액에 따라 이익이 배당되고, 때에 따라서는 전문 경영인이 생기는 병원! 경영이나 경제 전문가들이 생각하기에는 이런 병원들이 경쟁을 통해 수익을 내면 더 큰 병원을 지어 더 많은 의료 인력을 고용하는 청사진을 내놓기도 했다. 경쟁을 통해 의료 서비스가 좋아져 환자들의 만족도도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모든 정책에는 동전처럼 양면이 있기 마련인데, 그 이전에 위에서 설명한 편익조차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의료 전문가들이 많다. 우선 의료 서비스에 있어서도 경쟁 체계가 가장 잘 돼 있다는 미국의 경우 높은 의료 수준을 가지는 곳은 병원에서 생긴 이익이 다시 병원의 인력 훈련이나 시설확충으로 쓰였던 비영리병원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영리병원은 수익이 생기면 투자자들에게 나눠주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대신 부정적인 측면은 여럿 예상된다. 우선 의료의 특성상 고도의 전문가들을 길러내는 시간이 길게는 14~15년 가까이 걸리는데, 이들을 돈벌이 경쟁으로만 내몬다면 의료 인력 배치에 있어서 심각한 불균형이 생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에 저출산의 영향으로 산부인과 의사들이 자신들의 전문 과목을 접고 비만이나 성형 치료 등 다른 분야로 급속하게 이동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투자를 한 자본가들이 의료의 내용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병원을 경제적으로만 잘 운영해 수익을 내려 할까에 대한 의구심도 접을 수 없다. 때에 따라서는 고가의 의료장비를 들여와 이 검사가 필요하지 않은 환자에게도 이를 쓸 것을 강요할 것이고, 때에 따라서는 아주 싼 약이나 의료 장비를 쓰게 강요할 지도 모른다. 투자된 자본은 의료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사의 마음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수익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지금 의료체계에 대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번 제주도민의 민심과 나아가 국민의 요구는 의료가 수익을 우선 목적으로 삼아야 할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또 환자를 잘 진료하고 잘 돌보는 의사의 마음과 이를 지켜줄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을 원하고 있다는 해석도 과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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