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0 06:00 (토)
엄마는 왜 의사 선생님이 됐어?

엄마는 왜 의사 선생님이 됐어?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08.13 13:52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고경희(포천중문의대 교수 분당차병원 영상의학과 )

"엄마는 하필 왜 의사 선생님이 되었어? 그렇게 선생님이하고 싶으면 다른 친구 엄마처럼 미술 선생님이나 유치원 선생님이 되면 좋았잖아. 그러면 나랑 많이 많이 놀 수 있을텐데. 병원 가지마! 엉엉!"

유치원생 딸아이가 출근하는 나를 부둥켜 안고 운다. 이 녀석 내가 이 말에 맘이 약해진다는 것을 알고 아침부터 어리광이다. 아침에 이렇게 신파 영화를 한 판 찍고 나면 병원에 출근해도 마음 한 구석이 영 찜찜해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데, 막상 그 원인 제공자는 내가 출근하고 나면 아무일 없다는 듯 깔깔대며 잘도 논단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은 누구나 그렇듯이 마음 한편에 사랑하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자신도 모르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그러던 중 유치원 원장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유치원에서 학부형들을 대상으로 매달 실시하는 교양 강좌가 있는데, 유방암 조기검진에 대해 강의를 해줄 수 있냐고 부탁 말씀을 하셨다. 나는 기꺼이 하겠다고 했고 어찌나 부담이 되던지 그 어느 강의 보다 열심히 준비했다.

우리 딸은 유치원에서 나누어 준 유인물에 내 이름 석자가 인쇄된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 지더니 '우리 엄마가 의사 선생님이어서 유치원에 강의하러 온다'며 자랑하고 다녔다. 그 뒤로는 유치원에 가면 내가 상대방을 몰라 봐도 내게 반갑게 인사하며 "어머, 혜라 어머님이죠? 그 때 강의 잘 들었어요" 라고 말하는 학부형들이 몇 몇 생겼다. 그럴 때마다 딸아이는 "우리 엄마에요!"라며 자랑스럽게 날 쳐다본다.

최근에 내가 일하는 초음파실과 판독실에 아이를 데려와서 초음파는 어떻게 보이는 지 실제로 아이 목이며, 팔에 초음파 탐촉자를 대주기도 하고 폐사진과 척추 사진, 머리 사진들을 보여 주기도 했다. 딸아이가 '우리 엄마는 병원에 가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그렇게 바쁠까?'란 의문에 내 나름대로 해답을 주기위해 노력했고 엄마가 하는 일이 딸아이의 어린 눈에는 꽤 멋지고 훌륭해 보이는 것 같아 조금은 안심이 됐다.

다른 아이들은 잠들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 달라든지 혹은 노래를 불러 달라든지 한다든데, 우리 딸은 그날 하루 내가 본 환자 얘기를 해달라며 졸린 눈을 비빈다. 내가 근무하는 곳이 유방암센터이고 환자들은 거의 다 중년 여성이니 재미가 있겠는가? 그런 이야기만 줄줄이 하다 보면 딸은 지겨워 하며 "애들은 없어? 애들 얘기 해주셔요"한다. 그러면 나는 있지도 않은 상상 속의 환자들,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 100개 먹다가 배탈난 아이, 잠을 너무 안자서 눈병이 난 아이 등 실감나는 연기를 한다.

그 덕분인지 얼마 전 아이가 잠들기 전에 감동 멘트를 날렸다. "엄마 나 꼭 의사 되어서 분당차병원 영상의학과에 갈게. 하루 종일 엄마 옆에서 엄마 힘든 일 도와주게"라고.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