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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부를 다루는 법

환부를 다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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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9.0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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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중앙일보 기자)

#1. 지난 8월 27일 오전 11시 서울대병원 3층의 한 병실 앞. 드디어 A교수가 나타났다. 올 초 그에게서 간 이식 수술을 받은 모녀의 사연을 다룰 기사 때문에 인터뷰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약속보다 1시간 이상 지난 뒤였다. 하지만 파란 수술복도 벗지 못한 채 비틀거리듯 다가오는 그의 초췌한 모습을 보니 도저히 말문이 떨어지질 않았다. 원래 수요일은 수술 일정이 없는 날인데, 전날 저녁 6시부터의 수술이 이제야 끝난 것이라고 했다. 17시간! 사진기자 선배와 나는 말문을 잃었다. 의사나 의대생들에겐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인지 몰라도, 우리 '보통 사람들'에겐 정말 대단해 보였다. 외과의가 힘들다는 말이 새삼 실감이 났다. 그렇구나, 이래서 요즘 의대생들이 외과 전공을 기피하는 구나. 동시에 의사들이 갑자기 존경스러워졌다. 결국 다음날 다시 찾아뵙기로 하고 간단한 이야기만 들은 채 돌아왔다.

#2. 의사 출신의 제약사 간부인 B씨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 내외와 함께 부부 동반 골프를 치러 갔었단다. 우연히 뒤 팀의 후배 의사들을 발견했다. 제약사 홍보직원과 함께였다고 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각자 골프를 쳤는데 클럽하우스에서 다시 한 번 그 일행과 마주쳤다. 알고 보니 그 제약사 홍보직원은 티칭 프로였다고 한다. 아하, 이런 식의 홍보도 있구나, 하고 그는 놀랐단다. 그는 후배들에게 누가 그 골프 피를 냈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고 했다.

최근 서울대 의대 의료윤리 과목의 '이해관계 갈등(Conflicts of Interest)'에 관한 수업에 토론 패널로 참가했었다. '환자들의 입장'을 이야기해 달라는 요청이었기에 망정이지, 사실 보건복지 담당 몇 년의 경력 외엔 의사라는 직업의 세계에 대해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나로선 선뜻 응할 자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덕분에 관련 책과 자료 등을 찾아보게 됐다. 연초에 읽었던 <더러운 손의 의사들(원제 'On The Take', 양문 刊)>을 다시 펴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뉴잉글랜드 의학저널> 편집장 출신의 의과대 내과 교수인 제롬 캐시러라는 이가 제약업계와 의료계의 유착관계를 파헤친 책이다. 그가 지적한 식사 대접과 각종 선물, 학회 참석을 내세운 해외여행 지원, 학술 대회 및 연구 지원 등 기업들의 '미끼'와, 그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기까지 하는 일부 의사들의 이야기는 사실 미국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어느 수준까지는 관례화된 부분도 있어서 얼마만큼 엄격한 윤리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지 나조차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학생들과 함께 이 책을 번역한 가톨릭대 의대의 최보문 교수는 서문에서 "제약회사는 대적해야 할 상대가 아니라 인류의 건강을 위해 협력해야 할 대상이라는 점에서 일방적인 비난은 비생산적"이라며 "초점은 그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공정한 것으로 만들 것인가에 맞춰져야 할 것이고, 기업의 경영 윤리 또한 큰 틀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씁쓸한 여운을 주는 책이었다. 거기에 B씨의 이야기까지 듣고 기분이 찜찜하던 참에 간 이식 수술 취재 때문에 다시 서울대 병원을 찾았던 것이다. 딸이 떼어 준 간으로 생명을 되찾은 엄마, 한창 외모에 예민한 고3인데도 불구하고 선뜻 큰 수술을 받은 효녀, 그 어린 소녀의 흉터를 최소화하기 위해 몇 시간이 더 걸리는 수술을 시도한 의사…. 그들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다. 그렇지, 의사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지. 내가 그의 환자도 아니었는데 너무 고마웠다.  

대한의사협회가 최근 비윤리 회원에 대한 자정노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들었다. 성범죄를 저지른 회원들과 불법 광고를 한 회원 등을 중앙윤리위에 전격 회부하는 등 잇따라 강경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비윤리성의 범위나 기준, 자체 징계의 수준 등에 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아무튼 환부의 소독, 심할 경우엔 깨끗이 도려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의사들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newslady@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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