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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약제비 판결에 대한 올바른 이해
시론 약제비 판결에 대한 올바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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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9.0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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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두륜(변호사 대외법률사무소)

 

서울서부지방법원은 8월 28일 건강보험공단이 부당하게 환수해간 원외처방 약제비를 병원에 돌려주라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현재 서부지방법원에는 유사한 소송이 30여건 계류 중인데, 그 중 제일 먼저 소송을 제기한 이원석 원장과 서울대학교병원 사건에 관한 판결이 이 날 선고된 것이다. 2005년 시골 의사로부터 처음 시작된 약제비 관련 소송이 4년이 지나 결실을 맺는 순간이다.

이 판결은 현재 서부지방법원에 계류 중인 나머지 약제비 소송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아직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병원들도 소송에 참여할 것으로 보여 그 파급효과가 어마어마하다.

선고 직후 의료계는 일제히 당연한 결과라며 환영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부당한 판결이라고 주장하며 항소의 뜻을 밝혔다. 공단은 특히 이 판결로 인하여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고, 앞으로 의사의 과잉처방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면서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는 형식적인 법논리에만 치우친 부당한 판결이며 공익에도 반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유력 언론도 이번 판결 내용이 확정되면 의사들이 중복 과잉처방을 하더라도 정부가 이를 관리할 방법이 사실상 없어진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비판은 이번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우려는 이해할만하다. 판결 내용에 따르면 앞으로 보험공단은 수백억원의 약제비를 병원에 돌려 주어야 한다. 당연히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보험공단이 자초한 일이다. 병원은 원래 받아야 할 진료비를 돌려받은 것에 불과할 뿐, 보험공단에 손해를 가한 것이 아니다. 이번에 소송이 제기된 금액은 전체 환수 금액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판결이 그대로 확정된다고 하여 보험공단이 소송을 제기하지 아니한 병원에 대해서까지 약제비를 반환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바로 소멸시효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하면 보험공단은 법원에서 선고한 금액을 반환해 준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수 백원억 이상을 부당이득하고 있는 셈이다.

이 판결로 인하여 과잉처방이 조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맞지 않다. 의사들은 원외처방전을 발행할 때 약을 많이 처방하였다고 하여 처방료를 더 받는 것이 아니다. 의사는 약을 처방할 뿐이고 그로 인한 약값은 병원이 아닌 약국에 지급되는 것이기 때문에, 의사는 약 처방으로 인하여 어떠한 이득도 취할 수 없다.

오히려 요양급여기준에 반하는 약처방을 할 경우, 진찰료 중 처방료에 해당되는 부분이 삭감당하여 그만큼 손해를 입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진료비 삭감이나 현지조사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결국 이번 판결로 인하여 과잉처방이 조장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과잉처방에 대한 통제장치가 없어져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약제비 심사기능이  무력해질 수 있다는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요양급여기준에 위반된 약처방이 곧 과잉처방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과잉처방'이라고 함은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약을 처방한다는 의미인데, 그 판단은 '전문가인 의사'가 '진료의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한 후 '의학지식'에 따라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약제비 심사제도는 어떠한가? 요양급여명세서에 기재되어 있는 진단명과 식약청 허가 사항(또는 보건복지부 고시) 만을 단순 비교하여, 전문가가 아닌 전산 프로그램이 기계적·획일적으로 심사를 하고 있다. 각 약품에 대한 요양급여기준도 의학적인 수준이나 임상현실과 맞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 보험공단은 의사의 '과잉처방'을 비난하기 전에, 심평원의 '과잉심사' 혹은 '부당심사'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행 제도상으로도 의사의 과잉처방에 대한 통제 수단은 충분히 있다. 요양급여기준에 위반된 약 처방의 경우에는 처방료에 해당되는 외래관리료를 삭감할 수 있다. 현지조사를 거쳐서 해당 처방이 '사위 기타 부당한 방법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는 요양기관 업무정지 또는 부당금액의 5배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도 있다. 그리고 과잉처방 빈도가 높은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소위 말하는 '자율시정대상'으로 선정하여 진료비 삭감이나 현지조사 등 여러 가지 불이익을 가할 수도 있다.  

의사들이 위와 같은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요양급여기준에 위반하여 약처방을 한다면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의사들은 환자에 대한 관계에서 임상 수준에서 요구되는 최선의 진료를 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최선의 진료를 위해서 의학적으로 필요한 약을 처방하였는데, 그것이 요양급여기준에 어긋난다는 이유만으로 약값을 처방한 의사로부터 환수한다면, 이는 의사의 진료권과 재산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이번 소송의 핵심은 '의사의 진료나 처방행위가 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에 구속되는가' 하는 점이다. 이원석 원장이 거대권력인 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4년에 걸쳐 외롭고 힘든 싸움을 계속 했던 이유나, 서울대학교병원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합병원들이 소송에 참여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의사의 진료행위는 요양급여기준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가 의학적 판단에 따라 필요한 약을 처방하였다면, 그것이 비록 요양급여기준에는 위반되었다고 하더라도 불법행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이번 약제비 판결의 결론이다. 매우 당연하지만, 참으로 다행한 판결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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