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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09:09 (금)
식객(食客) 그리고 의객(醫客)
식객(食客) 그리고 의객(醫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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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9.1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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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상현(W병원장)

요즘 <식객>이라는 TV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연이은 수술과 진료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식객> 만큼은 재방송이라도 빼놓지 않고 보고 있다. 내가 <식객>에 빠진 이유는 간단하다. 같은 칼잡이(?)로서 동질감을 느끼는 부분도 있지만 음식 하나를 만드는데도 최선을 다하는 요리사들의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식객을 보면서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 '제대로 된 요리'는 미각과 후각뿐만 아니라 오감을 만족시킨다는 것이다. 예쁘고 보기 좋게 만들어진 음식은 시각을 자극하며, 재료의 성질을 최대한 살린 질감은 촉각도 자극하고, 씹히는 소리까지 염두에 둔 정성은 청각마저 사로잡는다는 것이다. "진정한 요리사는 접시에 음식을 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담는 것"이라는 대사는 가벼운 전율마저 느끼게 했다.

사실 요리사들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든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모습은 무엇보다도 아름답다. 각자가 속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노력과 땀방울이 현재의 문화와 산업발전을 이루어 왔고, 나아가 인류의 문명을 진보시킬 것임에 의문을 가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미세재건 수술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이 분야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개척 분야나 다름없었다. 맨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실과 바늘을 이용하여 지름 1mm미만의 가는 혈관을 수술 현미경 아래에서 꿰매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술이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 분야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팔이 없는 환자에게 뇌사자의 팔을 이식해서 일상생활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고, 최근에는 심한 화상으로 얼굴을 잃어버린 환자에게 기증 받은 안면부의 얼굴과 근육을 이식하여 새 얼굴을 만들어주는 수술까지 시행되고 있다. 한명의 환자라도 새 삶과 새 생명, 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하려는 많은 의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인 것이다.

오랜 기간 미세재건수술 분야에 매진해 온 의사로서 이 분야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역시 '보람'이다. 수술 자체는 힘들지만 수술의 끝에 얻어지는 보람은 어떤 것과도 비교하기 어렵다. 가끔은 원망의 소리와 질책의 탄성을 듣기도 하지만 팔다리가 잘린 절망의 상태에서 구급차에 실려왔다가 수술과 치료가 끝난 후 희망의 미소를 지으며 퇴원하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힘들지만 이 분야를 잘 선택했구나"하고 느낄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보람을 느끼려는 후배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잦은 응급 수술로 인해 사생활이 방해를 받고, 수술에 대한 집도의의 스트레스는 높고, 이에 반해 다른 비보험 진료과목과 비교하여 수입이 떨어져 젊은 의사들이 지원을 꺼리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물신풍조와 배금주의가 만연한 자본주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제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절망의 나락에 떨어져 있는 환자에게 새 삶과 새 희망을 선물할 수 있다면 이것보다 더 이상의 가치는 없을 것이다.

갈빗집과 횟집이 돈을 잘 번다고 해서 요리와 관련된 사람들 모두가 그것만 한다면 새로운 음식을 개발하고, 한국의 전통적인 음식문화를 이어가며 한국의 맛을 세계에 빛낼 진정한 <식객>의 역할은 누가 맡겠는가? 마찬가지로 많은 의사들이 단지 경제적 수입과 개인의 편안함만을 추구한다면 의료의 본질인 질병과의 싸움이나 생명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힘든 수술, 그리고 기초 의학 연구는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돈을 버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더구나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새 꿈과 미소를 되찾아주는 일을 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왕에 의사의 길을 택했다면 더 어렵고, 더 힘든 분야에 도전하는 진정한 <의객>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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