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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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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9.1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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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은경(광주중앙아동병원장)

세상에 제 힘만 믿어서 되는 일은 없으렷다.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역도 선수 장미란 양도 힘과 밸런스 모두를 적절하게 갖추었기 때문에 세계 신기록이 가능했다지 않은가. 

잔뜩 겁에 질려 진료실에 들어온 아가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이 세다. 제 힘만 믿고 억지로 아가의 고개를 잡아 방향을 돌리려고 했던 간호사들은 금방 녹초가 되기 일쑤다. 필요한 것은 힘이 아니라 호기심을 끌만한 장난감이다. 아가가 소리나는 장난감을 향해 저절로 고개를 돌린 바로 그 때, 재빨리 고개를 잡으면 힘들이지 않고 성공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과 눈치도 타이밍을 놓치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역기는 몇 시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힘과 밸런스를 느끼고 있다가 이때다 하는 순간에 불끈 들어 올리는 것이다. 아가가 호기심을 보이는 순간은 매우 짧아서 때를 놓치면 아가는 그 진료시간 동안 두 번 다시 그 장난감에 같은 호기심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은 요령도, 타이밍도, 힘도, 그 어떤 것도 다 소용없을 때가 있다.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소리 소리 질러대면서 온 힘을 다해 반항하는 아이와는 그 어떤 요령으로도 조용하고 기분좋게 진료를 마칠 수가 없다. 꼭 고막을 확인해야 하는 경우라면 몇 사람이 달라붙어 무지막지한 힘으로 잡아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 것이 옳다.

올 여름, 출석하고 있는 교회 의료봉사팀의 일원으로 베트남을 갔다. 의료봉사를 시작하자마자 단기 의료봉사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달았다. 한 손에 코란, 한 손에 칼이 아닌 다음에야 하나님을 알게 해주는 것은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귀를 기울여야 가능하다. 의사로서 나는 이런 자기만족 식의 봉사는 기만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에 괴로웠고,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 이들의 마음을 얻고 귀를 열게 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또 괴로웠다. 실은 고등학교 2학년 딸아이가 지난 학기부터 심한 사춘기 홍역을 치르고 있다. 그 딸아이가 기분 좋은 틈을 타 베트남에 가자고 꼬드겨 봉사팀에 함께 참여했다. 결과는 성공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봉사의 목적은 순수해야지 왜 선교가 봉사의 목적이 되느냐고 따지듯 묻는 아이에게 제대로 대답해주지 못했으니.

진료실에서 아가들을 다루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나는 아직도 딸아이의 입시에 대한 걱정 때문에 마음이 급해져 자꾸 실수를 한다. 제 삶에 대한 열정과 소망을 회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주려는 노력에 힘이 너무 들어가다보니 고개를 우격다짐으로 돌리려고도 하고 그나마 적절한 타이밍도 자꾸 놓친다.

장미란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은 신의 영역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딸아이의 사춘기 극복을 위해서는 힘 조절과 타이밍을 고민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더 많이 기도해야 하는가보다. 요즈음 절실히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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