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정성과 엄마의 죄책감

엄마의 정성과 엄마의 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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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0.13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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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하나(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
나는 황당한 설들을 진실처럼 잘 믿는 편이다. 합리적 사고와 명백한 증거를 바탕으로 현상을 판단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과학을 공부한 사람답지 않게. 어려서부터 각종 공상과학 소설에 탐닉하고, 그와 유사한 꿈을 꾸고, 엉뚱한 상상을 하는 버릇이 있기는 했지만. 문제는 성인이 되어 겉으로는 예쁘게 포장된 세상 일들이 그 속은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과대포장의 허실을 자꾸 경험하게 되면서 이제 나의 공상의 범주는 세상사의 크고 작은 일들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정도까지 되어버린것 같다. 더구나 요즘의 멜라민 파동은 모든 먹거리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 치달아 더욱 나를 힘들게 한다.

그런 와중에 "멜라민=못먹는 것=내가 직접 확인한 재료로 만든 먹을거리만 안전"이라는 단순한 공식이 주입된 뇌의 주름사이를 뚫고,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청개구리 근성'이 왜 하필 이 때 빛을 보고 싶어하는지. 평소엔 잘 먹지 않던 자판기 커피를 마셔줘야 졸음이 깨는 듯하고, 입덧하듯이 갑자기 카스타드 케익이 먹고 싶고(원래 나는 락토스불내성증이 있어서 모든 유제품은 큰 맘 먹고 먹어야 한다), 살찐다고 멀리하던 초콜릿 바라도 먹어야 뇌에 글루코스가 공급되어 빠릿빠릿 잘 돌아갈 것만 같다. 이런 내가 인터넷에 나돌고 있는 각종 중국산 식재료 관련 글들을 검색하다보면 늘 궁금하다.

인스턴트 식품이나 즉석 조리식품, 반조리 식품 등은 시간없고 바쁜, 또는 요리를 잘 못하는 일하는 여성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도우미였을테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재료 때문에 모든 음식은 국산 재료를 사다가 엄마 손으로 직접 정성들여 만들어 먹여야 한다는 식의 기사가 굉장히 많다. 덧붙여 음식재료에 대한 성토와 유명 음식점 주방장이 울고 갈 솜씨로 각종 레시피를 올려 놓는 웹사이트는 조회수가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만큼 올라가고. 물론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극도로 기이해지는 체질적인 문제와 까칠한 입맛 덕에 마트에서 별로 사 먹을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러니 인터넷 즐겨찾기에는 전국의 각종 식재료별 특산품 사이트가 가득하다(이런 된장녀 같으니라구!). 게다가 밥 사먹으러 나가기도 귀찮아 웬만하면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 밥 먹고 남는 시간에 낮잠이라도 자려고. 연구는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 할까나(학장님, 죄송합니다. 농담입니다!). 

하지만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 담긴 식사'에 대한 기사를 볼수록 드는 생각은 그렇게 손수 시간과 돈을 들여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정성들여 음식을 장만하는 당연한 일이 일하는 엄마에게는 너무도 큰 일이라는 거다. 그런 엄마들은 당연한 일을 해 주지 못해 미안할 거 같다. 괜히 내가 화가 난다. 

흐음. 이젠 남는 시간에 10분 안에 완성하는 초간단 요리법을 연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논문은 언제 쓰려냐. 히유. 갑자기 또 진한 자판기 커피와 달디단 초콜릿 비스킷이 땡긴다. 중국산 옥수수로 만든 뻥튀기도 먹고 싶어진다. 싸고 구하기 쉬우니까. 우리 엄마가 말씀하실거다. "죽지 못해 안달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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