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에는 그리운 사람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자

올 연말에는 그리운 사람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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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0.2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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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섭(조선일보 논설위원)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보이는 우체국 창가에서 그리운 사람에게 크리스마스 씰을 카드에 곱게 붙여 보내자.

겨자씨만한 사랑도 모이면 위대한 사랑이 되듯이 한 장의 씰은 우리에게 많은 얘기를 전해준다. 남의 아픔을, 남의 고통을 기억하라고?.

씰은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다. 덴마크의 우체부 아이날 홀벤은 지금부터 104년전인 1904년 꿈을 꾸었다. "연말에 부치는 소포나 엽서, 카드에 동전 한닢짜리 씰을 붙여 그 돈으로 결핵기금을 만들어 결핵환자를 돕게 된다면 얼마나 세상이 아름다와질까?". 유럽의 산업화로 결핵이 만연하면서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결핵 환자 친구들을 위해 그는 그런 소박한 꿈을 실행에 옮겼다.

우리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결핵 씰을 받으면 왜 강제로 학생들에게 떠맡기냐며 하소연했다. 우표로도 쓰지 못하는데 왜 이런 것을 사야 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래도 우리는 연말이면 일선국군장병아저씨께, 파월장병 아저씨께 위문편지를 보냈다. 예쁜 크리스마스 씰을 옆에 붙이고.

씰은 우리에게 결핵으로 죽어간 사람들의 아픈 역사를, 그리고 결핵퇴치에 나선 사람들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씰에 담긴 사랑을 몰랐다. 교과서도 선생님도 누구도 우리에게 그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

우리나라 씰에는 구한말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첫 외국인 소년 셔우드 홀의 평생의 꿈이 담겨있다. 소년 홀은 그가 이모처럼 따르던 박에스더가 결핵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본명이 김점동이었던 박에스더는 홀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병원에서 간호 일을 돌봐주다가 미국 볼티모어 의대로 유학을 갔다 온 우리나라 최초 여의사다.

가난하고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던 민중들에게 '신의 손'이 되었던 박에스더. 34살의 젊은 나이에 결핵에 걸려 숨진 그녀 앞에서 홀은 결핵퇴치를 위해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홀은 아버지 모교인 캐나다 토론토의대에 진학해 결핵을 전공하면서 그 꿈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귀국후 해주구세병원장으로 있으면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결핵요양원, 결핵위생학교를 만들었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씰 호응이 높은 것을 보고 온 그는 결핵 퇴치 자금을 모으기 위해 크리스마스 씰을 도입했다. 씰에는 'XMAS AND NEW YEAR GREETINGS' '健保(건보), GOOD HEALTH'라고 써있었다.

1전짜리 씰이었지만 그 씰은 우리에게 희망의 전도사가 됐다. 씰을 품에 안으면 결핵이 걸리지 않는다며 꼭꼭 품에 갖고 다니는 이들도 생겨날 정도였다.

홀은 일제에 의해 일제말 간첩죄로 추방됐지만 그가 씨를 뿌린 크리스마스 씰은 연면히 이어졌다. 해주구세병원에서 그를 도왔던 한국인 의사 문창모씨 등이 뒤를 이었고 지금은 결핵협회에서 매년 발행하고 있다.

매년 연말이면 조용히 무릎꿇고 앉아 이 땅에 결핵퇴치 꿈을 심어 넣고 떠난 홀을 생각해야 한다. "내 호흡이 멎거든 내가 태어나서 자랐던 아름다운 한국땅에 묻어주오. 이 땅을 사랑합니다"라는 홀의 유언을 기억해야 한다. 1932년 크리스마스 씰을 만들면서 홀이 꿈꾸던 결핵없는 세상은 아직 요원하다. 결핵 사망률 1위라는 오명은 여전하다.

이번 연말엔 크리스마스 씰을, 사랑의 씰을 크리스마스 카드에 붙여 먼 고향 그리운 친구에게 띄우자. 
ds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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