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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화끈 종규'와 품격있는 정부
'화끈 종규'와 품격있는 정부
  • 최승원 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08.11.2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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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지정제 폐지'를 주제로 열린 한국보건행정학회 학술대회에서 임종규 보건복지가족부 과장의 화끈한 발언은 관심을 집중시켰다.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하는 관료들의 일반적인 행태에 비해 그는 의료계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당연지정제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 '화끈 종규'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칭찬은 여기까지다. 시원시원한 그의 자세와는 달리 공무원으로서의 '품격'에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당연지정제 폐지의 명분은 일부 인정하지만 국민에게 별다른 실질적인 이익을 주지 않기 때문에 폐지할 수 없다고 했다. 국민에게 이익을 줄 수 없는 정책을 공무원이 어떻게 추진할 수 있냐고도 되물었다.

그의 말을 듣다보면 의문이 든다. 그럼 의사는 국민이 아닌가. 그가 말하는 국민 속에 의사는 없어 보인다. 의사 역시 일반 회사원이나 택시기사·선생님·영세상인과 마찬가지로 아웅다웅 이 힘든 시기를 버티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특히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계약에서의 자유권을 제한받는 이유에 대해 최근들어 부쩍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 이유를 관련부서 공무원에게 묻고 있는 거다.

품격있는 정부의 공무원이라면 의사의 계약자유권이 다른 직역들과는 달리 제약받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국민인 의사를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아니면 30년 동안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는 기본권 제한을 그대로 둬야하는지 의문을 가져봐야 했다.

그러나 그날 '화끈 종규'는 국민에게 이익이 없고 국민 건강에 위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폐지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30여년간 잣구하나 변하지 않은 이 대답이 솔직히 이제는 굉장히 지겹다.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구체적으로 어떤 위해가 국민에게 가해지는지 국민인 의사는 과학적인 설명이 듣고 싶다.

한가지 더. 실질적인 이익이 발생할 때 관료는 움직여야 한다는 그의 실용주의적인 생각은 높이 살 일이지만 국가 혹은 공무원은 이익이 발생하지 않더라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지 않다면 움직여야 하는 공공성을 띤 주체라는 점도 고려해줬으면 한다.

이날 발제를 맡은 박은철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이런 말을 했다. "국가가 의료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영국에서 조차 영국정부는 지정을 위한 신청절차를 밟는다."  '품격있는' 영국정부가 어떤 의미로든 계약자유권을 제한받고 있는 국민인 의사를 배려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보면 지나친 해석일까.

'품격있는 정부'라면 의사의 권리나 의사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권리 역시 국민의 권리로서 그 무게가 같다는 전제를 인정할 것이다. 품격있는 정부는 "그냥 쪽수 적은 니들이 참아"라고 윽박지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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