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요? 여기자는 아무래도 더 힘들겠죠?"
이름도 낯선 중고생, 혹은 대학생들로부터 종종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먼 친척이나 취재원 중에도 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 딸이 있다며 내게 직접 상담을 부탁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여기자 수도 많이 늘었다. 중앙일보의 경우 지난해 신입기자 9명 중 여자가 6명, 남자는 3명이었다. 남자 기자가 오히려 소수가 된 것이다.
그들에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있다. "체력부터 길러. 다이어트니 뭐니 하면서 비실대는 애들은 일단 아웃! 무조건 튼튼해야 돼."
실제로 대학 전공 같은 건 별로 상관이 없다. 공대나 약대, 심지어 음대나 의대 출신 기자도 있으니까. 괜히 어렵게 입사해놓고 금세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그만두지 않으려면 중요한 건 체력이다.
여자도 예외 없이 수습기자 시절엔 일주일씩 집에도 못 들어가고 노트북을 들고 여기 저기 뛰어다니는가 하면, 잠적한 취재 대상을 찾아내기 위해 남의 집 앞에서 눈치를 보며 며칠씩 밤새 지키고 있어야 할 때도 있다. 취재원과 폭탄주를 마시거나, 수해나 화재 현장의 집 잃은 이들과 똑같이 피폐한 생활을 하며 취재해야 할 수도 있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긴장 속에 지내야 하는 스트레스도 엄청나다. 거기에다 취재원들 중엔 인생 밑바닥까지 내려가 있는 이들이 많은데, 그들로부터 평생 들어보지 못한 험한 말들과 모욕을 들어도 절대 눈물을 보이거나 약해 보여선 안 된다. 20대 초반이었던 나도 경찰서에 잡혀 들어온 강간범이 내게까지 히죽대는 모습에 이를 악물며 취재했던 기억이 새롭다.
수습을 떼고 초년생 기자 시절을 벗어나 일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요령'이 생기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자의 경우는 잠깐이다.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거기에 아이까지 낳게 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슈퍼우먼'으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에 부닥친다. 임신 중 입덧을 심하게 해도 드러내지 못하고, 아이 돌봐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선후배들도 적지 않다.
내 경우 대중음악을 담당할 때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평소 같으면 취재가 아니라 해도 달려가 즐겼을 god나 김장훈 콘서트가 몸이 안 좋던 내겐 얼마나 끔찍하던지…. 스피커를 통해 쾅쾅 울리는 음악소리와 팬들의 환호성에 만삭의 나는 기겁을 했었다.
그나마 나는 큰 애가 태어나자마자부터 지금까지 거의 10년을 함께 살고 계신 도우미 할머니 덕분에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조작 사건 등 큰 일이 터져 한 달 이상 매일 새벽 2~3시에 집에 들어가야 했을 때도 아이들 걱정 없이 잘 견뎌낼 수 있었다.
워낙 고된 직업이기 때문인지, '결혼 시장'에서도 여기자는 인기가 없다. 골드미스나, 같은 처지(?)인 기자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 중 하나다. 젊은 여기자들은 그래도 남편들의 가사 도움을 많이 받는 편이다. 하지만 그들조차 아이를 갖게 되면 힘들어한다. 여전히 언론사는 1년 간의 육아 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든지, 아이들 때문에 회식 자리에서 눈치 보지 않고 먼저 일어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어디 기자 사회만의 문제일까. 사회 곳곳에 여성들의 진출이 급격히 늘었지만 '모성 보호'에 대한 인식이나 제도의 변화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의사 사회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2006년에 이미 전체 의사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었다. 그런데 여의사들을 만나 보면 이들도 역시 결혼과 출산에 대해 여전히 커다란 부담감을 털어놓곤 한다.
최근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가 1.20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거의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다.
우리 모두 '모성 보호'에 대한 인식을 확 바꾸지 못하는 한 쉽게 나아지지 않을 현실인 것 같아 안타깝다. newslad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