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조성래 선생님 영전에 삼가 옷깃을 여미고 고합니다.
오늘 선생님의 영전에 모여 머리를 숙인 저희 후학들은 선생님의 후덕한 인품과 빛나는 유덕을 깊이 가슴에 새기며, 이제 하늘나라로 인도되신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고 인생은 구름처럼 덧없다는 옛말에 기대어, 저희는 이 비통함을 달래어 봅니다. 생자필멸(生者必滅) 제행무상(諸行無常), 선생님이 남기신 빈자리에 이 가르침을 올려놓고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선생님은 1926년 경상북도 칠곡 약목에서 출생, 대구중학교를 거쳐 1950년 경북대학교 문리과대학 의예과에 입학했으나 재학 중 6·25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의무병으로 종군하여 적군에 수차례 포위되어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어야 했습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 복학하여 1956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57년부터 6년간 도립포항병원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근무하시면서 포항지역 의료의 선구자로 인술을 펼치셨습니다. 1962년부터 포항시 상원동에서 명성의원을 개원, 인술제세(仁術濟世)와 광제혜민(廣濟惠民)의 정신으로 국민복지 향상에 이바지하면서 1984년까지 22년간 개원의사로 활동하셨습니다.
선생님은 포항 전체를 통틀어 의사라야 10여 명에 불과하던 1950년대 말부터 9년간 포항시의사회 총무로 활약하면서 의사회 재건에 힘쓰셨으며, 포항지역 의료계가 도약의 기지개를 키기 시작한 1974년부터 2년간 제21대 포항시의사회장을 맡아 회원 상호간의 친목과 단결을 위한 디딤돌을 놓으시고, 의학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신의학 보급에 앞장 섰으며, 무료진료사업에도 적극 나서는 등 참된 의도구현(醫道具顯)을 위해 솔선수범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저희 550여 명의 포항시의사회 회원들의 대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1972∼1973년 국제라이온스클럽 309-N지구 포항라이온스클럽 제5대 회장, 1974∼1975년 309-N지구 지역 부총재, 1994∼1995년 309-N지구 경북지구 고문을 역임하며, 평화와 박애, 자유와 지성을 추구하는 '라이오니즘'을 구현하는 데 헌신적으로 노력하시면서 지역사회 발전과 장학기금 조성에 앞장서 어려운 지역학생들의 면학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였습니다.
1974년부터 2년간 경북의대동창회 동해지부회장으로 활약하신 선생님은 동문 선후배간의 화합과 유대강화에 노력하시고, 모교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셨습니다. 1983년부터 포항의구회 초대회장을 맡아 골프를 통한 건강증진과 회원 상호간의 우의를 도모하는 데 헌신하셨으며, 포항지역 군·관·민 간의 유대강화를 통해 의사의 위상을 제고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1985년 제2대 지방공사 경상북도 포항의료원 의료원장에 취임, 9년 6개월 재임기간 동안 의료원 본관 신축, 의료장비 현대화, 정신병동 개축, 무의촌 순회진료 등 포항의료원이 경북 동남권지역에서 의료의 중추적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쏟아 포항의료원이 오늘날의 경쟁력을 갖춘 우수 지방공사 의료원이 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셨습니다.
선생님은 후학들을 위해 1993년 말 포항의료원을 그만두신 후 10여 년간 노령에 정정하시게 한 신검의료기관에 봉직하시던 중 말년에 폐종양으로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음은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만나면 헤어지기 마련인 것이 속세의 인연이요, 탄생은 죽음을 잉태하고 있는 것이 자연의 법도이기에 선생님은 우리의 곁을 떠나가셨지만, 선생님의 공덕과 온후한 성품은 저희들의 가슴 속에서 길이길이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하늘나라에 임하신 영령이시어, 부디 평안히 잠드시옵소서
2009년 3월 31일
최동하 포항 송라요양병원장 재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