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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보테르전…일러스트레이터 홍원표 작가 동행기

페르난도 보테르전…일러스트레이터 홍원표 작가 동행기

  • 윤세호 기자 seho3@kma.org
  • 승인 2009.07.1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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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일까지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홍원표 일러스트레이션 작가.   사진/윤세호기자 seho3@kma.org

 

1932년 콜럼비아 태생의 세계적인 거장 페르난도 보테르의 내한전이 9월 17일까지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다(이번 전시는 1980년부터 최근까지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풍만한 양감을 통한 인체의 새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 중 '모나리자'를 패러디한 그림. 아쉽게도 이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는 볼 수 없다.
로운 해석(비정상적인 형태감과 화려한 색채)과 인간의 천태만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평단의 호평과 함께 중남미 지역의 정치·사회·종교적인 문제 등 정서적 사실주의 경향을 보여준다는 그의 작품들.

풍자와 해학으로 버무려진 작품속의 캐릭터(?)는 어찌 보면 매우 코믹하기도 하고 현대미술의 거장이라는 평단의 격찬에 사뭇 걸맞지 않게 어린이들이 보기에 더 없이 재미있고 즐거운 작품들로 갤러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가운데로 몰린 눈, 작은 입술로 그려진 무표정한 얼굴은 마치 '장기하와 얼굴들'의 '미미시스터즈'를 연상시킨다. 남녀노소 얼굴이 모두 같다. 몸과 그림 속 상황만 다를 뿐이다. 그래서 그림이 더욱 재미있다. 동화일러스트레이션이 연상됐다. 하지만 왠지 전시된 작품에 비해 그 홍보 문구가 너무나 웅장해 무게감과 거리감이 느껴진다. 좀 더 가볍고 친숙하게 볼 수도 있을텐데…. 보테르전을 다른 시각으로 보면 안될까? 이러저러한 이유로 재미난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션 작가 홍원표 씨에게 함께 관람을 청했다.

금요일 오후, 덕수궁미술관을 일러스트레이터 홍 작가(사진, 36세)와 함께 했다. 이번 내한전은 정물&고전의 해석·라틴의 삶·라틴 사람들·투우&서커스·조각 등 크게 5가지의 컨셉으로 꾸며졌다. 관람 후, 전시장에서 조금 떨어진 홍대근처 작은 카페에 인터뷰를 위해 자리를 잡은 시간은 대략 오후 4시쯤.

죽마를 탄 광대들, 2007년, 캔버스에 유채, 186X119cm
▶보테르전을 어떻게 보셨나요?

- 일러스트레이터 입장에서 작품들이 순수회화작품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매력적인 일러스트작품처럼 느껴집니다. 캐릭터가 재미있고 모티브의 양감이나 구성이 매우 흥미롭네요. 작가가 처한 시대상황이나 정치적인 면면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제 주관적인 입장에서만 보았을 때, 요즘 현대미에 반하는 캐릭터의 설정이 매우 재미있어요. "나는 뚱뚱한 인물을 그리지 않는다"라는 보테르의 말이 관람객 입장에서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들리며 S라인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볼륨감의 미학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표현 중에 매력적인 일러스트작품처럼 이라는 의미는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죠?

- 예컨대 인물들의 우스꽝스런 모습이나 표현을 말하는 거죠. 이렇게 재미있고 화려한 색채와 아기자기한 구성의 그림체로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을 만든다면 어떨까요? 만약 이 전시를 어린이들이 본다면 마치 그림동화책을 보는 그 이상의 재미를 느끼지 않았을까요? 깊은 철학과 정치성을 배제하고 오로지 관객의 순수한 시선으로 그림 자체만 보라고 권하고 싶군요.

▶그렇다면 일러스트레이터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따로 있나요?

- 피카소·르누아르·벨라스케스 등에게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는데 캔버스에 그려진 순수한 그림체가 마음에 다가옵니다. 그림에 있어서 스킬과 테크닉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돼요. 작품의 아이디어나 설정 등 이러한 부분이 제가 추구하는 일러스트레이션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컨셉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보테르의 그림도 그렇게 느껴져요.

▶좀더 전시를 재미있게 보는 홍 작가만의 노하우가 따로 있다면?

- 우선 그림 자체만 바라봅니다. 뚱뚱한 사람들과 한 결 같이 무표정의 얼굴들, 간지럼을 태운다면 곧 빵하고 터질 듯 한 느낌. 그런데 한명 정도는 살짝 웃는 얼굴을 넣으면 더 재밌을것 같은데요. 일단 어떤 정보 없이 그림 자체만을 순수하게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를 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가의 관점에서 다시 한 번 보는 것이죠. 이유요? 간단합니다. 누구든지 '거장의 작품이다'라고 먼저 알고 그림을 보면 존경심을 가지고 작품을 대합니다. 즉, 선입견을 갖기 쉽다는 것이죠. 재미있는 작품을 '재미있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철학적이야', '역시 대가는 달라' 뭐 이런 식으로 변하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그림을 재미있게 관람하기 보다는 좀 진지하게 바라보겠죠. 어떤 정신이 깃들여져 있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하나하나 그런 식으로 접근을 한다면, 어휴…미술이 마냥 어렵게만 느껴질 것 같지 않나요? 하하. 제 생각이고요. 전 어려운 접근 방법은 싫거든요. 편하게 그림을 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이제부턴 홍 작가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일러스트=삽화, 좀 더 발전되어진 표현이 갤러리일러스트 등으로 불리우는 등 일러스트레이션이 저평가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내한전을 가져 큰 인기를 끈 구스타프 클림트도 실제로는 포스터나 출판물의 그림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러스트레이션이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은 무엇 때문일까요?

- 일러스트레이션은 상업 미술입니다. 그림을 전공한 사람들 혹은 그렇지 않지만 소질이 있어 독학(?)으로 입문한 모든 이들을 광의적으로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부르죠. 때문에 이른바 소위 순수미술이 점차 많은 학문적 지식을 요구하는 것에 반해 아직까지도 상업일러스트레이션 분야에서는 학문적 지식보다는 실력이 더 우선입니다. 이런 점이 장점이자 역으로 약점이 되는 것 같아요. 이와 함께 너무 상업만능주의에 빠진 작가들의 마인드도 일조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과연 보테르가 돈을 벌어 먹고 살기 위해서 그림을 그렸을까요?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생각해 볼 여지가 많습니다.

TV광고 일러스트작품 중. 홍원표 작.
▶그렇다면 홍 작가의 작품관은?

- 현대미술은 포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어느 장르이건 말이죠. 나는 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합니다. 우울하지 않고 밝은 분위기속에서 보는 재미가 아주 많이 넘쳐났으면 합니다. 그래서 그런 요소들을 항상 연구해요. 그림 속에 나만이 알고 있는 암호를 그려 넣기도 하고 전화번호, 심지어 이름을 집어넣곤 주변사람들에게 찾아보는 재미를 만듭니다. 물론 혼자 음미하는 맛도 일품입니다. 재미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어렸을 때 부터 우주를 동경해 하늘을 날아다니는 인물, 우주복을 입은 사람들을 화면 어딘가에 꼭 그려 넣었어요. 그 속엔 토끼도 있어요. 왜냐구요? 약하고 순한 짐승인 토끼는 저만의 '아이덴티티'입니다. 하하. 누군가 제 그림을 보곤 이건 홍 아무개 그림이야 라는 '시크릿아이콘'. 재미나지 않습니까! 재밌죠?

▶누구나 가장 궁금해 하는 점 한 가지. 한 달 벌이는 괜찮나요?

- 오래전 그림을 직업으로 삼는다고 하니 아버지께서 그러시더군요. "그림은 취미로 하고 공무원이나, 차라리 사업하는 것이 어떠냐. 그림만 그려서 밥 먹고 살 수 있겠냐" 라구요. 하하. 지금은 믿어주십니다. (진지하게)일러스트레이터도 작은 개인 사업가라고 생각해요. 작업 오더로부터 시작해서 클라이언트와 함께 작품료에서 완성까지 협상을 혼자서 해내야 돼요. 그림만 그려서는 안되죠. 협상능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바쁠 때는 10건 정도의 프로젝트도 동시에 진행해 봤어요. 정신이 없죠. 수입이요? 글쎄요…대략 대기업 부장(?)정도의 연봉? 하지만 돈만 바라보고 그림을 그리지는 않아요.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초심이라면?

- 일러스트레이션계에 처음 입문한 것이 대학원 때 였어요. 동양화를 전공하고 있던 저에게 동기가 자신이 그린 단행권 표지를 보여준 것이 계기가 됐죠. 그 후 처음 그린 책을 받아 보았을 때 책 말미에 찍힌 제 이름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닥치는 대로 드로잉 연습을 했죠. 길거리에서도, 패스트푸드점에서도…. 그렇게 미쳐서 시작한 이 일에 대해 지금은 너무나 자부심을 느낍니다. 활자로 인쇄된 제 이름, 바로 그것이죠.

------- 이러저러한 그림 이야기에 사는 이야기…홍대앞 작은 카페에 어느덧 그의 그림 동료들이 하나둘 모여들더니만 작은 모임이 되어버렸다. 밥 때를 지나 저녁 8시를 넘어가는 시간…여전히 그림쟁이들의 사는 얘기는 수다스러웠고 재미났다. 누가 말할것도 없이 만들어진 식사 겸 술자리…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그를 오후 내내 인터뷰 하며 연신 부러워하던 기자에게 술잔을 기울이던 모작가가 던진 한마디.

"있잖아요. 아이가 조금 있으면 유치원을 다니는데, 요즘엔 그래요. 놀다 들어오면 저를 쳐다보며 '왜 아빠는 항상 집에만 있어?'라구요…작업실을 따로 구해야 할까봐요…"

살짝 취기어린 그의 눈빛에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가장의 삶이 순간 연민으로 다가온다.

"저요? 글쎄요…우리 아파트 아래층에 사는 할머니를 가끔 놀이터에서 마주치는데 안쓰럽게 쳐다봐요. '젊은 사람이 일도 없이 집에만 있으면 어떡하냐'고 그러시는데…무릎 나온 추리닝 차림만 아니었어도 좀 덜 했을 텐데 영락없이…하하."

 

<홍원표 작가는?> 홍익대학교 대학원 동양화 전공. 36세. <현대카드 CF "행동패턴편">·<현대카드 CF paydown plan 전3편>·<그린에너지 생생원자력 시리즈 1, 2, 3권>·<영어로 쇼를 하라 1, 2>·<모리>·<바다로 간 고래바위> 등 경력 10여년의 베테랑 중견 일러스트레이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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