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7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1983년 2월 25일 오전 11시쯤 다급한 방송이 울려 퍼졌다.
"여기는 민방위본부입니다. 지금 서울 인천 경기지역에 공습 경계경보를 발령합니다. 국민 여러분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지금 북한기들이 인천을 폭격하고 있습니다."
이 때 필자는 집에서 혼자 TV 보면서 노닥거리고 있었는데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당시 울려 퍼진 공습 사이렌과 다급한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필자에게 공포감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했고 저녁 뉴스를 통해 전국적으로 라면·우유·밀가루 등의 사재기가 벌어졌다는 보도를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당시 북한 공군 이웅평 대위가 MiG-19기를 몰고 서해의 북방한계선을 넘어 귀순한 사건이 오보된 해프닝이었다. 본 사건은 정부 및 언론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가 잘못되었을 때 국민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는 한 사건으로 여겨진다.
요즘 신종플루 관련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제일 중요한 사실은 신종플루의 치사율이 일반 독감에 비해 높지 않은데 연일 보도되는 무분별한 신종플루에 대한 기사들 때문에 국민들이 지나치게 '무서운 병'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정확한 실체가 없는 '공포'는 광우병 파동 때와 같은 여론 호도 양상까지 보이게 함으로써 국가적 손실까지 우려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계절 독감으로도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갖지 않다가 이번 신종플루에 대해서는 과장된 공포를 조성하고 있다고나 할까? 이는 언론의 과장된 보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근한 예로 최근 보건복지가족부에서 발표했다고 언론에서 보도된 신종플루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2만명이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는 기사를 통해 전국적으로 공포심을 조장한 사실을 들 수 있다.
비록 이에 대해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이 보도는 최악의 상황을 가장한 시나리오이며 우리나라 공식적 자료로 볼 수 없다"며 해명을 했으나 이왕에 조성된 공포감을 완전히 잠재울 수는 없을 듯하다.
실제로 보면 8월 중순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신종플루 환자 3312명 중 2048명은 다 나았고 치료를 받고 있는 1262명 중 대부분인 1248명은 경미한 증세만을 보여 집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환자는 1.1%(14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까지 4명의 사망자가 발생해 치사율을 따지면 0.1% 미만 수준으로 과거 큰 문제를 일으킨 사스(SARS)의 10%보다 훨씬 낮고, 1918년 스페인 독감의 2.5%보다도 낮다.
또한 사망한 두 환자는 기존에 폐렴환자였고, 다른 한 사망자는 천식을 앓다가 역시 폐렴으로 인한 패혈성 쇼크로 사망했으며, 나머지 한 사망자도 평소 고혈압·당뇨·신부전증 등을 앓고 있던 고위험군 환자였기 때문에 신종플루가 겹친 합병증 환자였다.
즉 '신종플루'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사망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가 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결국 언론에서는 어떤 사건을 기사화시킬 때 사실의 극적인 면을 강조하는 면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언론사 또한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를 정상적인 기업활동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언론사를 통해 어떤 사건이 기사로 보도될 때 그로 인해 사회에 해악을 끼치게 될 가능성이다. 이러한 예는 '우지라면' 사건 등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면 작금의 신종플루 사건의 보도를 통해 어떤 현상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벌어지고 있을까? 먼저 병원에서는 필요 이상의 공포에 사로잡힌 감기증세 환자들의 방문에 시달리면서 오히려 치료를 받아야 할 중환 혹은 응급환자들을 치료할 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지고 있다.
또 사회적으로는 학생 중 환자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각급 학교가 휴교를 하고 의심 증상을 보이는 회사원들은 확진 증세가 나올 때까지 불안감에 떨고 있을 뿐 아니라 예비군훈련까지 취소됨으로써 사회적 손실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쩌면 경기회복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물론 신종플루 관련 기사들을 통해 신종플루 등 바이러스 감염 치료 및 예방을 위한 제약 및 백신 산업의 활성화라는 순기능도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신종플루의 치료제가 한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독점생산되고 있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신종플루의 유행이 세계적으로 대서특필되고 있는 현 상황은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즉 '세계적 기사제공을 주도하는 다국적 언론통신 회사의 여러 보도가 우리나라 언론사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검증 및 여과 없이 기사화됨으로써 국민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하는 점도 있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21세기는 지리적 및 시간적 그리고 모든 면에서 세계가 실시간적으로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이는 국제화된 사회가 되었다. 물론 세계화는 매우 좋은 면이 많다.
그러나 주체성과 다양성의 소실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즉 어떤 주류가 정보 및 자원을 독점할 경우 그렇지 못한 지역이나 국가 혹은 사회는 올바른 선택을 하기가 매우 곤란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신종플루 등 의료적 문제 뿐 아니라 다른 여러 사건들이 보도할 때에는 해당 기사가 정확한지를 파악함으로써 언론방송사뿐 아니라 및 우리나라 사회에 혼란을 가져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방송의 기사를 작성하고 보도하는 전문가와 의료 등 해당 분야 전문가의 긴밀한 협조가 요망되며 이를 위한 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신종플루와 관련된 바람직한 언론 보도는 매일같이 몇 명이 감염됐는지, 오늘은 또 누가 감염이 됐는지 등의 소개로 막연한 공포감을 확산시킴이 아니라 본 질환의 증세와 위험인자를 소개하고 개인청결 등의 예방법을 보도함으로써 사회의 불신과 해체가 아닌 신뢰와 통합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