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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의대 '三十而立'
중앙의대 '三十而立'
  • 김인혜 기자 kmatimes@kma.org
  • 승인 2001.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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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의대' 현재 재직 교수 150여명과 의학부생 550명, 대학원생 286명 등이 교육받고 있는 중앙의대는 민병근 초대 의료원장과 양용태 초대 의대학장이 취임한 1980년부터 의과대학으로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후 82년 의학과 1회 졸업생 전원이 전문의 시험에 합격하는 등 중앙의대의 교육과정은 성과를 내게 된다. 중앙의대가 설립 당시부터 이상적인 의학교육 모형으로 제시했던 `조기 임상교육'과 `의학과 3·4학년 과정의 통합강의'가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실제 중앙의대는 의예과를 신설한 71년부터 74년까지 유기화학·현대물리학·의예개론·비교해부학·유전학·이상심리학·세포학·발생학 등의 전공과목을 물리화학·세포학·의학개론 등 9과목으로 축소하고 전공과정이 개편된 96년부터는 의예과 교과 과정에 생명과 철학, 한의학개론 등을 새롭게 신설해 교과 과정에 탄력을 주어왔다.

또한 중앙의대의 통합 강의제도도 교육 효과에 한 몫 했다는 평가다. 이 제도는 기초의학 및 임상의학을 통합한 계열별 집약교육을 고학년에서 실시하는 것으로 의과학 교과과정중 주요 과목을 재정비함과 동시에 학습효과를 극대화시킨다는 목표로 적용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라 중앙의대는 75년 후반기부터 통합 강의 시스템을 도입, 본과 3·4학년에 적용하기 시작해 이들이 3학년 2학기와 4학년 1학기가 되는 때부터 교내 66명과 교외 122명의 교수들이 출제한 문제로 시험을 실시했다.

도입 결과 각 과목의 성적이 고르게 상승한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극단적인 성적 소유자가 평균점 주변으로 이동함으로써 학생들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 된 효과가 난 것이다. 효과를 확인받은 통합 강의제도는 91학년도까지 매주 금·토요일 2학기에 걸쳐 진행됐으나 교육과정 개편으로 92학년도부터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연속된 강의진행 계획에 따라 의학과 4학년 1학기 후반 4주와 4학년 2학기 전반 5주간 실시되고 있다.

임상실습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어 91년까지 꾸준히 유지되어 온 임상교과목 강의와 임상실습이 92년부터는 의학과 3학년 2학기 학생을 대상으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36주간 계속 진행되도록 했다. 이후 98학년도부터는 내과실습 강화를 위해 임상실습과정에 약간의 변화를 줘 내과학 실습과 정신과학, 방사선과학 실습을 늘려 임상실습을 36주에서 42주로 확대,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과학연구소 부속성심병원 개원으로 의과대학보다 부속병원을 먼저 갖춘 중앙의대는 이후 70년, 부속성심병원을 중앙의대부속병원으로 개편하면서 병원 확장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후 7대 병원장에 민병근 교수가 취임하면서 부원장제도 폐지, 진료부장·교육연구부장·행정부장제 신설 등 병원 운영에 탄력을 가하면서 중앙대의료원도 성장가도를 걷기 시작했다. 철도병원(현 용산병원)을 임대사용하기로 계약을 체결한 83년부터는 학교법인 중앙대학교 부속용산병원으로 개원, 91년에는 서울시로부터 중앙의대부속병원 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되는 등 병원 확장에 가속도가 붙기도 했다.

그러나 중앙의대의 성장 가도에도 걸림돌은 있었다. 의대의 열악한 교육 환경과 조교 처우 개선 등을 놓고 문제를 제기해 왔던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는 등 의대환경 개선을 위한 요구가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메디컬 캠퍼스를 둘러싸고 본격적인 요구에 나선 일부 학생들은 본관 점거 등 강력한 의사를 표출, 91년에는 마침내 학교측으로부터 메디컬 캠퍼스 건립 부지 확답을 얻어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중앙의대의 숙원 사업이었던 메디컬 센터 건립은 신축 공사 지연, 재단과의 갈등 등으로 2000년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해 지지부진한 상태를 계속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학생들은 수업거부 투쟁을 벌였으며 교수들도 사표를 제출, 재단측과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중앙의대의 메디컬 캠퍼스 요구는 갖은 시련끝에 결실을 맺어 재단측이 2001년 3월 MC 시공사와 계약을 체결, 현재 기초공사가 진행중이다.

이후 중앙의대는 2000년 한 때 의약분업 사태로 인한 수업거부 사태 등이 있었으나 평정을 되찾은 이후 교수진 150여명과 의학부 재학생 550여명이 중앙의대인으로서 전통을 잇는 작업에 다같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 99년 홍창권 교수와 최응상 교수가 각각 의료원장과 필동병원장에, 또 2001년 2월에는 12대 의과대학 학장에 이원복 교수가 각각 취임하면서 오늘에 이른 중앙의대는 현재 의과대학내에 기획위원회, 장학위원회, 임상실습교육위원회 등 14개의 위원회를 조직, 운영하고 있으며 해부학을 비롯한 9개 분야의 기초의학교실과 내과학, 외과학 등 20곳의 임상의학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2001년 현재 25회 졸업생을 배출한 중앙의대는 또 1회 졸업생 41명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2,191명의 중앙의대 동문을 배출했으며 기초의학과 임상의학 각 분야 대학원 의학과에 석·박사 231명이 재학중이다. 그러나 임상병리학교실에는 2001년 현재 석·박사 재학생이 한 명도 없는 상태여서 교실 창설 이후 실시한 검사의학적 연구와 분자 생물학적 연구의 계보를 이을 지원자를 시급히 확보해야 할 실정이다.

한편 2001년 현재 기초의학분야에서 가장 많은 재학생 분포를 보이고 있는 대학원 의학과 생리학교실은 73년 교실 개설이후 `지혈 및 혈액응고의 생리학적 기전에 관한 연구'를 비롯, 심장 및 심장 근육에 관한 연구와 흥분성 세포의 전기생리학적 연구로 영역을 확장해 왔다. 특히 생물물리학적 방법을 통한 연구에서는 포타슘 이온 통로의 성상에 관해 연구,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는 평가다.

이와 함께 내과학교실은 68년 개설, 소화기, 순환기, 일반내과의 3개 분과로 나눠 세분화되기 시작한 80년이후부터 위궤양에 대한 연구를 비롯, `폐기능 성적을 토대로 말초 소기도질환의 조기진단법, 호흡기 알레르기 병력이 없는 20대 한국인에서 흡인성 항원에 의한 피부시험 및 히스타민 기관지 유발 시험 연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이외에 피부과학교실과 안과학 교실도 각 교실이 개설된 68년이후부터 연구활동에 전념, 안과학교실은 특히 최근 10년간 110여편의 연구 논문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의과대학 연구장학회도 77년 창설된 이후 의대 졸업생에 대한 대학원 장학급 및 연구보조금, 학술연구 시설 보조금, 도서출판 사업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의대 동창회도 연구장학사업을 88년부터 시작, 중의연구장학회라는 이름으로 재학생들과 교수들에게 장학금 및 연구비를 지급하고 있다.

숙원사업의 첫 삽을 든 중앙의대는 이제 MC 건립을 계기로 새롭게 변모하려고 한다. 그동안 와신상담해 오면서 갈고 닦은 중앙의대의 저력이 이제는 중앙의대의 왕성하고 다양한 활동으로 표출돼 쇄신의 중앙으로 새롭게 출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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